■ 우리는 어디쯤 와 있나
“삼성전자와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최소 10개는 나와야 한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최근 “국민소득 3만, 4만달러 시대에 진입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 IBM, 월마트 등과 같은 초우량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에서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사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34억달러의 매출(해외법인을 포함한 글로벌 기준)을 기록해 세계 전기ㆍ 전자기업 가운데 독일 지멘스, 미국의 HP에 이에 3위에 올랐다. 특히 전체 매출의 80.8%인 840억달러(51조419원)를 수출, 우리나라 전체 수출(3,715억달러)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지난해 투자규모만 국내 600대 기업의 4분의 1 수준인 22조5,000억원에 달했다. 새 정부가 내세우는 ‘7ㆍ4ㆍ7플랜(연평균 7% 성장, 10년 후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 진입)을 현실화하는 주체는 결국 우리 기업일수 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처럼 우량한 기업을 10개 정도 키울 수 있다면 새 정부의 미래 청사진도 어렵지 않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멀다. 지난해 포천지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중 우리 기업은 14개에 불과했다. 현재 국민소득 4만달러 대인 프랑스(38개)나 독일(37개)에 비해 한참 뒤쳐진다.
중국의 경우 4년 전만 해도 글로벌 500대 기업에 포함된 기업은 11개였지만, 올해는 24개에 달했다. 국가별 500대 기업 보유 수에서도 중국은 7위에 오른 한국을 제치고 네덜란드와 공동으로 5위에 랭크돼 무서운 상승세를 보였다.
글로벌 플레이어를 키우는 문제는 개방화ㆍ글로벌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현실에서 선진국 진입이라는 당면 목표를 넘어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각 산업 부문별로 내수는 포화상태에 도달해 이제 시야를 해외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기업들이 전세계를 무대로 적기 투자, 과감한 시장 개척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다. 단순히 해외에서 공장을 짓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우량기업을 인수ㆍ합병(M&A)해 몸집과 기술 역량을 키우고, 세계 속에서 뛸 글로벌 탤런트들을 적극 채용하고 육성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세계경제에서 선진국의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가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등 글로벌 시장이 급변하는 만큼, 신흥시장을 집중 공략해 내수 중심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이미 글로벌 플레이어가 된 삼성전자 같은 기업은 ‘글로벌 챔피언’기업으로 각각 조속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현재 선진 각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개방화와 고성장으로 신중산층이 형성되고 있는 신흥시장 공략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들 기업은 기존 브랜드 파워를 앞세워 현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상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면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세계적인 휴대폰 업체 노키아의 경우 중국과 브라질 등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5~15년 후까지 시장 트렌드를 내다보며 공세를 펴고 있다.
도요타는 초저가 모델 생산을 위해 2010년 인도에 공장을 신설할 예정이고, 월마트는 향후 5년간 중국 내 매장 수를 2배로 늘리는 한편 올해 인도에 첫 매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에 맞서 중국과 인도, 중동의 신흥 글로벌 기업들도 글로벌 M&A를 통해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만회하며 빠르게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해 가고 있다.
지난해 1~9월까지 개도국의 선진국 기업인수 규모는 1,280억달러로, 선진국 기업의 개도국 기업인수 규모(1,300억달러)와 맞먹는다. 지난해 말 인도의 타타그룹은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재규어와 랜드로버 인수전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 우리기업들 앞으로는M&A도 인재영입도 ‘지도 밖으로’
이런 세계적인 트렌드와 새 정부의 친기업적 경제 정책이 맞물리면서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플레이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전경련이 지난해 말 조사한 2008년 30대 그룹의 시설투자계획에 따르면 올해 투자계획은 지난해(75조5,000억원) 대비 19.1% 증가한 89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시설투자 외에 연구·개발(R&D) 투자를 합한 30대 그룹(공기업 제외)의 투자규모는 100조원 가까이 된다. 가령 지난해 7조원을 투자했던 현대ㆍ기아차그룹은 올해 모두 11조원을 투자한다. ‘글로벌 포스코’를 향해 힘찬 행군을 하고 있는 포스코도 지난해 4조원에서 올해 8조원으로 투자 규모를 배로 늘렸고, 한화그룹도 글로벌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해 1조원에서 올해 2조원으로 증액했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주요 기업들은 해외 M&A에도 적극 나설 움직이다. 사실 지난해 STX가 노르웨이 조선업체 야커 야즈를, 두산이 미국 건설장비 업체의 주요 사업 부문을 인수하는 등 일부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아직 대다수 기업들은 원화 강세라는 변화된 조건에서 M&A를 통한 성장전략을 거의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경쟁 업체들이 먼저 선진 업체를 M&A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경우 신흥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입지는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배지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처럼 M&A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일본 기업들도 최근에는 국내ㆍ외 M&A를 통한 성장전략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며 “성장세나 수익성이 둔화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M&A는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글로벌 M&A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한층 성숙하기 위한 필수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려면 외국의 핵심인재인 ‘글로벌 중역’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중국과 두바이 등은 글로벌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인재 활용에 있다고 보고, 글로벌 인재 영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투자공사의 경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국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영입할 계획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문지원 수석연구원은 “우리 기업들도 글로벌 전역을 대상으로 한 개방적인 인재확보 전략을 수립, 기술인력뿐 아니라 조직 전 계층에서 외국인 영입을 확대해야 한다”며 “또 확보된 인재는 조직 내 고립된 섬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직문화를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