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을 통해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순차적으로 이행하면 입시 자율화가 조기에 연착륙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교협의 역할이 모호할 뿐 아니라 대학간 서열화 고착 등 부작용만 낳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입 완전 자율화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이다.
대교협 조정능력 미지수
인수위는 ▦입학 전형의 기본 방향 ▦전형 자료와 유형 ▦전형 일정 확정 등 그 동안 교육인적자원부가 관할하던 대입 전형의 일부 주요 기능을 올해 상반기 대교협에 이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가 대입 기본계획 수립에 개입하며 ‘붕어빵’식 대입 제도를 양산했다는 이유에서다.
대교협은 ‘대입 자율화 추진 태스크포스팀’을 가동, 이르면 내달 말까지 대학간 이해 조정 등 핵심 업무에 대한 구체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대교협 관계자는 “대교협에 대학 입학제도 연구위원회 등 전형 관련 기구가 이미 있어 큰 잡음 없이 업무 이관이 가능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전국 201개 대학 총장들의 ‘친목 모임’ 성격이 강했던 대교협이 국ㆍ공립대와 사립대, 수도권대와 지방대로 나뉜 각 대학들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엄존한다. 최근 수능 등급제 보완 시기를 둘러싸고 불거진 대학간 갈등은 대교협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21일 전국대학입학관련처장협의회가 ‘수능 등급제의 2010학년도 이후 보완’ 안을 내놓자 고려대와 연세대 등 서울 7개 주요 사립대는 즉각 “다수 의견과 무관한 발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교협이 주요 대학의 거수기 역할 밖에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상당수 대학들은 학생을 받아들이는데 급급해 전형안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수도 없다”며 “현실적으로 주요대의 입김 작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자율화로 대학 서열화 우려
대입 자율화가 실현되면 대학별 서열화 현상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끊이지 않고 있다. 상위권 대학이 다양한 전형으로 우수 학생 싹쓸이에 나설 게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중하위권 대학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한 지방 국립대 관계자는 “내신 부담을 느껴 지방대로 오는 우수 학생이 적지 않았다”며 “앞으로 주요대가 수능 위주로 전형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아 우수 학생 유치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열화에 따른 대학간 ‘부익부 빈인빈’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박거용(상명대 교수)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소장은 “서열화는 결국 신입생 등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재정 등 대학 경쟁력에 큰 영향을 줄 것” 이라고 단언했다.
본고사 부활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인수위가 “자율규제를 통해 본고사를 금지 시키겠다”고 밝히자 주요 대학들이 본고사 도입 불가를 천명하고 나섰지만 구두선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지방 사립대 관계자는 “주요 대학들은 더 나은 변별력을 원할 수 밖에 없다”며 “논술이 어려워지고 나아가 변형된 형태의 본고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 관계자는 “교육부 논술 가이드라인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데 자율규제로 통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책무성 지렛대로 자율화 이뤄야
대입 자율화가 입시 부정과 비리를 조장할 수 있다는 부정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말 터진 대학 편입학 비리는 편입학 전형 자율화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자율에는 엄격한 자기통제가 따라야 한다”며 “대학들이 입시 비리 등 도덕적 해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대입 자율화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대학들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전형안을 신속하게 마련하는 게 급선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강태중 교수는 “이번 자율화 방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과거로 회귀할 우려가 있다”며 “대학들이 책무성을 강화한 전형안을 공동으로 내놓고 사회적 평가를 거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 교사 54%“자율화 사교육비 경감 효과 없다”
교총 설문… 10명 중 6명“영어몰입교육 반대”
교사 10명 중 6명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도입 계획을 밝힌 영어몰입교육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따르면 18~25일 전국 유치원, 초중등 교사 910명을 대상으로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0%가 영어와 다른 교과의 영어수업 진행에 반대했다. 찬성은 16.6%에 불과했다.
교사들은 영어수업 확대에 따른 역기능으로 '심화학습의 불가'(48.7%)를 가장 많이 꼽았고, '영어 사교육비 증가'(20.7%) '수업 부담 증가'(18.4%)가 뒤를 이었다.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이 공교육 정상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긍정(36.1%)과 부정(39.2%)이 비슷했으나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없을 것'(53.8%)이라는 의견이 '효과가 있다'(22%)는 의견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수능 과목 축소가 사교육비를 줄일 수 없을 것'(47.4%)이라는 의견도 긍정적인 응답(35.5%)보다 11.9%포인트 높았다.
교사들은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 등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의 문제점으로 '포함되지 않은 학교의 상대적 박탈감'(24.73%) '고교입시 경쟁 가중'(23.85%) '사교육비 증가'(19.67%) '지역간 학력격차 증가'(19.34%)를 지적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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