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한ㆍ유럽연합(EU) FTA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두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계속 차질을 빚을 경우 새 정부의 적극적 대외개방 전략이 시작부터 꼬일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27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한국과 EU측은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울에서 FTA 제6차 협상을 갖는다.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3대 핵심 쟁점 중 우리측 안에 대한 EU 측의 내부 검토가 지연되고 있는 상품 양허, 입장 차이가 큰 자동차 기술 표준을 제외하고 원산지에 대해서만 협의하기로 했다.
지적재산권, 서비스ㆍ투자 등 비핵심 분야에 대한 마무리도 시도한다. 당장 입장 차이를 좁힐 수 없고 협상 준비가 안된 핵심 쟁점은 일단 제쳐놓는 우회전략이다. 김한수 우리측 수석대표는“6차 협상에서 비핵심 쟁점 분야에 대한 타결을 이끌어 내면 협상에 새로운 모멘텀(추진력)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4, 5차 협상에서 시도했던 핵심 쟁점 정면 돌파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타결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양측은 지난해 상반기 협상을 시작하면서 연내 타결을 기대했지만 현재로서는 3월로 예상되는 7차 협상에서 최종 타결될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EU와의 FTA가 지지부진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미 FTA 비준 지연도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EU는 당초 한미 FTA 협상 타결에 자극을 받아 한국과의 FTA를 서둘렀다. 협상 초반부터 최종안에 가까운 적극적인 개방안을 들고 나와 우리측을 당황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EU측은 한미 FTA 비준이 양국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유를 되찾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상임위(통일외교통상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통외통외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여부를 논의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며 한나라당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총선 등 정치일정에 따른 정치권의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28일부터 열리는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 극히 불투명해졌다. 우리측이 먼저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미 의회를 압박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지만 반대로 2월 임시국회를 넘기면 곧바로 총선 체제로 넘어가 다시 한미 FTA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전문가들은 어렵게 타결시킨 한미 FTA가 표류할 경우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다른 FTA에 미치는 상징적인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핵심 이슈인 한미 FTA가 진전이 돼야만 EU 협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될 것”이라며 “미국, EU와의 FTA 해결 없이 적극적 대외개방 전략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는 만큼 정치권의 대승적인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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