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동희의 작업 <과적된 메아리(overloaded echo)> (2006)는 다양한 사람들이 비밀스런 분위기의 지하에 모여 원탁에 앉은 채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복면을 쓴 전라의 남자-원탁 한가운데 서서 쓰러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 회전하는-를 구경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8분 23초짜리 HD비디오 영화다. 과적된>
기존의 극영화를 독해하는 눈으로 이 단편 영화를 보면, 이는 ‘한 불쌍한 남자의 덧없는 노력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냉정한 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 같다. 또는, ‘의도치 않게 불쌍한 남자의 덧없는 노력을 보게 된 사람들은 무기력한 방관자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프로이드적 정신분석을 시도한다면, ‘정신 나간 독립영화’ 같은 이 작품은 불특정 관객의 시선 앞에서 헛짓을 하는/해야만 하는 작가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전적 우화가 될 수도 있다. 해석이야 순전히 보는 이의 자유지만, 이 작품이 그리 간단한 서사를 바탕으로 삼은 영화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작품의 구상은, 알카에다의 한국인 인질 참수 동영상-작가가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봤던-에서 받은 강렬한 충격에서 시작됐다. 작가는 “참수 장면을 담은 동영상에 대한 제 감각기관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과는 크게 달랐어요”라고 말했다. 최초의 충격에서 벗어난 뒤, 그는 이 사건의 시각 문화적 층위들을 생각해보게 됐다. 충격을 소화하는 방어적 기제였을 테다.
작가는 모니터 상에서 죽음을 반복적으로 재연하는 남자의 굴욕, 그 영상을 하나의 인터넷 링크로 인지, 클릭한 뒤 끔찍한 참수를 관람하게 되는 (피핑 탐의 처지에 놓인) 네티즌들의 굴욕 등, 이 시각적 사건의 굴욕적인 차원들을 새로운 동적 이미지로 치환했다. 작가는 그렇게 추출한 굴욕적인 시각적 제시/경험의 이중 구조를 계속 수정하고 치환했고, 결국 원래의 이야기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상당히 추상화된 구조의 알레고리 영상을 완성했다.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가장 기이한 것이, 촬영 당일의 혼돈이다. 실제 촬영 상황에서 작가는 통제를 갈구하는 ‘감독’의 입장에 서있다. 하지만 그의 머리는 ‘방관자’의 입장에 선채, 자신이 마주한 상황에서 늘 ‘새로운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이 작업을 크게 변형하도록 허락해버린다. 이러한 모순적인 태도가 야기하는 틈을 통해, 영화는 매우 엉뚱한 요소들을 포섭해내는 데 성공한다.
작가는, “‘그 어떤 무언가’가 확 튀어 나와서 제 생각이며 감정을 뒤바꿔 놔요. 그런 게 촬영 끝날 때까지 구석구석 흔적을 남겨요”라고 말한다. 자신이 연출한 상황에서 제 스스로를 이격시켜 창작 주체를 게임의 중요한 일부, 더 나아가 희생자로 만드는 일에 성공한 영화감독이 영화사에 있는지 궁금하다.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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