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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개인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삶의 씨줄과 날줄로 엮은 우리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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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주리 개인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삶의 씨줄과 날줄로 엮은 우리들 이야기

입력
2008.01.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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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두 시의 커피타임, 공항의 이별, 브래지어를 입는 여자의 등, 담뱃불을 붙여주는 술자리, 퇴근길 버스의 피로, 메뉴를 고르는 레스토랑의 남과 여, 길모퉁이 키스하는 연인, 애절하게 전화기를 붙든 여자와 흐느끼는 어둔 방의 남자, 무료한 오후의 공상하는 젊은이, 공원 벤치의 외로운 여인, 침대에 걸터앉은 불면의 밤, 사진 찍는 남자와 피사체가 된 여자의 수줍은 뒷모습….

열거하기도 숨가쁜 비정성시(悲情城市)의 일상이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그러나 칸칸이 구획된 거대한 화폭에선 일말의 온기와 웃음기가 배어나온다.

고독한 도시의 삶을 서정과 유머로 껴안아온 중견 작가 황주리(51)의 개인전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편안하고 따뜻한 그림으로 늘 ‘인기작가’라는 타이틀이 붙는 그가 1980년부터 2007년까지 팔지 않고 품어왔던 대표작 50여점을 한데 내놓은 전시다.

황주리 특유의 화려한 원색과 다수의 컷으로 분할된 화폭은 30년 세월을 한자리에 놓고 보아도 시종하다. 미니멀한 이미지 속에 유머와 감상이 조응하는 그림언어도 한결같다. 하지만 수많은 화소(話素)들을 나눠 담은 컷의 형태는 격자의 그리드에서 원, 꽃, 등(燈), 안경, 돌 등으로 그 형태를 부드럽게 변주해왔다.

‘출판사집 딸내미’였던 덕분에 원고지가 낙서장이었던 작가는 1980년대 초반 원고지 위에 추억의 대상들을 하나씩 그려나간 ‘추억제’ 시리즈로 유명세를 탔다. 원고지의 격자는 변화를 거듭한 끝에 최근 꽃송이로 바뀌어, ‘식물학’이라 명명된 근작들은 나에서 사회, 국가, 세계, 우주로 뻗어나가는 “관계항의 번식”을 보여준다.

“인간의 모든 흔적은 유적이 된다”고 말해온 작가는 최신작으로 20여년간 모아온 우편엽서 위에 그림을 그린 옴니버스 작품 ‘여행 환영식(Reception On Journey)’을 선보인다. 여행지에서 산 기념엽서부터 우편소인이 찍힌 사연 어린 엽서까지 하나씩 모아 붙여 그 위에 그림을 그린 작품. 작가는 “돌무덤을 올리는 것처럼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하나씩 쌓은 것”이라며 “펼치면 거대한 태피스트리가 되는,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 인생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황주리의 화려한 원색 작품을 흑백 변환한 듯한 모노톤의 작품들도 상당수 걸렸다. 원색 작업에 비해 대중의 관심을 덜 받았지만, 작가 스스로는 더 애착을 갖고 있다고. 회색도시의 쓸쓸한 일상이 흑백영화처럼 한결 애잔하다. 2월13일까지. (02)734-6111

박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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