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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인도네시아 前대통령 사망/ 32년 피의 통치·개발 독재로 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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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인도네시아 前대통령 사망/ 32년 피의 통치·개발 독재로 악명

입력
2008.01.2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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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간 철권을 휘둘렀던 수하르토(86)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인도네시아판 박정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군 장교에서 시작해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것이나, 민주주의와 인권을 희생시킨 독재자라는 오명과 함께 경제번영을 이룩한 개발의 주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겹치는 경력은 닮은꼴이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부하의 총탄에 숨지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지만 수하르토는 다른 독재자와 달리 망명하지 않고 국내에서 비교적 평안한 말년을 누렸다는 점이 눈에 띄는 차이다. 특히 재임 중 저지른 부정부패의 폐해는 다른 독재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네덜란드 통치기였던 1921년 6월8일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에서 태어난 수하르토는 고교 졸업 후 네덜란드 식민지군에 입대, 부사관으로 출발했다.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군도를 점령하자 일본군이 조직한 방위군에 재입대해 장교로 임관한 그는 다른 식민지인들처럼 처음에 일본군을 환영했으나 일본 패망 즈음인 45년 항일투쟁하기도 했다.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군인으로 복무하던 그는 65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무력 진압한 것을 계기로 67년에 수카르노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았다.

수하르토의 철권통치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공산주의자들과 좌파, 친 중국인사, 중국인, 친 수카르노 인사 등에 대한 무차별적 숙청을 자행해 이 때 희생자만도 민간인을 포함, 50만~10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68년 3월 임기 5년의 대통령에 정식 선출된 수하르토는 수카르노와는 정반대로 반공ㆍ친서방 정책을 수립하고 경제개발을 최우선하는 ‘신체제’를 선언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달라진 인도네시아에 앞 다퉈 투자했다. 이 돈으로 인도네시아는 원유를 생산하고 이익을 사회간접자본과 경제개발계획에 재투자해 66년 630%에 달하던 인플레는 72년 9%대로 급격히 떨어지는 성과를 이뤄냈다.

외교에서는 수카르노 대통령 당시 탈퇴한 유엔에 재가입한 데 이어 67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창설을 주도하는 등 동남아시아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는 데 공을 세웠다. 76년에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동티모르를 합병했다.

장기집권에 따른 폐해도 엄청났다. 부패감시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는 2004년 수하르토를 ‘20세기 가장 부패한 정치인’으로 규정한 뒤 그가 재임 때 국고에서 빼돌린 금액이 150억~35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수하르토의 몰락은 97년 인도네시아에서 촉발된 외환위기에서 시작됐다. 석유와 가스산업의 수익을 이용 연평균 7%의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인도네시아는 그 해 7월 루피아화 폭락과 물가폭등으로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폭동과 소요사태가 이어졌다. 결국 98년 5월 재야세력과 학생들의 정권퇴진 요구로 확산된 민주화 운동에 무릎을 꿇고 권력을 내놓으면서 32년에 걸친 정치권력을 마감했다.

■ 추종자들 아직 政財界서 활약 덕 편안한 말년

수하르토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집권 기간에 살인과 처형을 일삼던 독재자였으면서도 안락한 노후와 품격 있는 임종을 맞은 보기 드문 경우에 속한다. 수하르토의 이런 노년은 그의 추종자들이 아직도 인도네시아 정재계에서 실권을 쥐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현 대통령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을 '선배'라고 칭하며 병문안을 하는 등 수하르토에 존경심을 표시해왔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수하르토와 같은 인도네시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집권 기간에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집권기간에 각료 등 요직을 맡았던 고위 공무원들도 여전히 주요 직책을 맡고 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 집권 시절 무역산업부 장관을 역임한 모하마드 밥 하산은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퇴진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인도네시아 체육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2005년 부정부패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 받은 직후 IOC 총회에서 제명됐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여섯 자녀들도 인도네시아에서 주요 기업들을 경영하고 있다.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셋째 아들 후토모 만달라 푸트라는 인도네시아에서 자동차 제조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그는 2002년 자신에게 뇌물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판사를 살해하려다 15년형을 선고 받았으나 4년 복역 후 2006년에 석방됐다.

토미 수하르토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그는 부친의 집권 시절 시티 수하르토 밤방 수하르토 등 형제 자매와 함께 이름 앞 글자를 딴 '도시바 왕국'이라는 악명을 얻으며 자동차, 금융 등 주요 기업을 장악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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