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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권교체기의 사극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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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권교체기의 사극열풍

입력
2008.01.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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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TV프로그램과 영화의 상당 부분이 사극이라는 점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모> 나 <대장금> <허준> 같은 색다른 인물들이 사극의 주인공이 되는 현상도 있었고, 연산군을 재해석한 영화 <왕의 남자> 가 2006년도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일도 엊그제 같기만 하다. 그러나 연말과 새해 벽두까지 장안을 후끈 달군 사극드라마는 이전의 사극들과는 무언가 다른 부분이 있어 눈길을 끈다.

■ 정치통념 바꾼 개혁군주 부각

생각해 보자. <태왕사신기> <대조영> <주몽> 등 고구려를 소재로 했던 일련의 사극 열풍 이후 이즈음의 신 사극들은 모두 한 시대와 한 국가의 운명을 극적으로 바꾼 '위대한 왕', 기존의 수구세력과 대항하여 정치의 통념을 뒤바꾼 개혁 군주들을 다룬다.

<이산> <대왕 세종> 같은 드라마들이 한결같이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이들이 어떻게 온갖 난관과 음모 속에서도 권좌에 오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제왕 등극기'에 시간을 할애한다.

사실 영화나 TV속의 사극들이 과거의 임금을 무덤에서 되살려, 현재의 지도자상에 투영하고자 했던 은밀한 욕망은 만국의 공통적 현상이다. 중국의 경우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가 등장했을 때, 당시 중국 관영TV에서 방영된 <강희제국> 은 전 중국에 강희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폴란드의 안제이 와이다 감독도 <당통> 이라는 프랑스혁명의 기린아를 통해 1980년대 당시 폴란드 공산당과 그 지도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 대한민국에서 신 사극에 반영되는 새로운 지도자상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가지 주지할 만한 사실은 지난 대선 때 유행했던 <용의 눈물> 의 태종과 달리, 요즘 사극 속의 임금들은 죄다 '훈남' 배우들에다, 단호하면서도 사소한 것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자상'한 왕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운명뿐 아니라 개인에게 관심이 많고, 특히 기술 좋고 머리 좋은 민초라면 자신의 전략 사령부의 일원으로 삼는 파격도 서슴지 않는다.

또 이들은 <주몽> <태왕사신기> 의 왕들과 달리 정복으로 영토확장을 꾀한 왕이 아니라, 국가의 내실과 개혁을 다진 왕들이다. 밀실정치와 당파싸움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국민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동력 삼아 정치권의 내분과 소용돌이를 극복해 나간다.

이즈음 사극을 곰곰이 명상하다 보면, 새로운 지도자에게 국민들이 은근히 바라는 은밀한 요구가 분명해진다. 합리와 효율성도 중요하지만 민초들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는 소탈한 대통령, 그러면서도 시스템의 개혁을 멈추지 않는 융통성 있고 부드러운 대통령을 열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지나친 상상에 역사 왜곡ㆍ누락

오직 여기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사극으로서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다. 의상과 말투, 세트 등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첨가하는 것은 신선하지만 때론 역사를 왜곡하고, 일부 과거가 누락되기까지 한다.

아무리 사실과 상상의 결합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상상으로 최소한의 시대적 개연성마저 포기한다. 과연 <이산> 에서 천주학에 대한 박해와 양민학살의 광풍이 그려질까. 과연 영조 시대는 음모와 파벌만 횡행한 시절이었을까.

그러니 지도자들은 이 사극들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거꾸로 시청자들은 객관적 거리감을 두고 사극을 지켜 볼 필요가 있겠다. 정권교체기에 늘 그래왔듯이, 지금 이 땅의 사극도 <대왕 세종> 의 기획의도처럼 지금 '오래된 미래'로 작용할 뿐 아니라, '새로운 과거'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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