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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설국의 료칸, 온천과 성찬 그리고 평온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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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설국의 료칸, 온천과 성찬 그리고 평온 속으로

입력
2008.0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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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에서는 ‘여인숙’은 물론 ‘여관’이란 간판도 보기 힘들어졌다. ‘OO장’에서 ‘모텔’로 일반화하더니 조급 고급화한 것은 대놓고 ‘호텔’이란 명칭을 갖다 붙인다.

일본의 ‘료칸(旅館)’은 한국의 여관과 같은 단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의 공간이다. 료칸은 단순한 숙박시설이 아니 문화다. 일본의 전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고품격의 휴양소라고 할 수 있다. 잠만 자거나, 짧은 사랑을 나누고 훌쩍 떠나는 한국의 여관과는 다르다.

몸의 긴장을 풀어줄 온천이 있고, 헛헛함을 채워줄 ‘가이세키’(會席ㆍ일식 코스 정찬)라는 화려한 음식이 있고, 마음을 감싸 안을 고즈넉한 편안함이 있는 곳이다. 번잡한 쇼핑이나 관광 대신, 차분히 여행을 향유하고 싶은 이들에겐 료칸이 그 정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북서쪽에 자리잡은 니가타는 눈과 술, 쌀의 고장이다. 순백의 풍요로운 이 고장에 맑고 정갈하고, 손님을 위한 극진한 서비스가 있는 료칸이 빠질 수 없는 일.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雪國)> 의 고장인 니가타의 소도시 에치고유자와(越後湯澤)로 아련한 정취를 담뿍 담은 설국의 료칸 여행을 떠났다. 흰 눈 소담스레 이고 있는 전통 료칸들은 나름 각자의 자부심과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 정통 료칸의 진수 류곤(龍言)

류곤은 정성스럽게 가꿔진 일본식 정원과 눈옷을 두툼히 입고 있는 삼나무 숲을 바라보는 노천탕, 다다미로 꾸며진 객실 등을 갖추고 있는 전통 고급 료칸이다. 류곤은 울창한 삼나무 숲에 아늑하게 들어앉았다. 300년이 넘은 사무라이 저택 등 근방의 100년 넘은 고옥들을 옮겨와 개조한 고풍스러운 전통 목조건물로 지어졌다.

문 앞까지 마중 나온 지배인을 따라 다다미로 된 응접실에 안내받았다. 이로리(화덕 위에 천장걸이 주전자가 걸려있는 공간)에 앉아있자 손님맞이 다과가 차려진다. 짐이 먼저 옮겨진 후 구불구불한 긴 복도를 따라 들어간 객실. 탁자 위에 다기 등이 차분히 정돈돼 있다. 전화기도 다이얼 식이고 그마저 까만 천으로 덮여있다. 전통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다.

저녁을 먹기 전 빳빳하게 풀 먹인 유카타(욕의)로 갈아입고 노천탕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는 노천탕을 ‘로텐부로(露天風呂)’라 부른다. 이슬과 하늘과 바람과 음률이라. 뜨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눈발 날리는 차가운 냉기에 머리를 내놓고 있자니 이슬과 하늘, 바람이 몸으로 젖어 들어온다. 탕 위로 하늘거리는 수증기는 눈으로 느끼는 음률인가.

상쾌해진 몸으로 식당에 들어서자 테이블은 음식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료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인 저녁 가이세키 요리다. 최고의 그릇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든 산해진미가 차례로 나온다. 음식의 모양이나 색도 놀랍지만, 그 맛에는 전통 료칸의 자부심이 깊게 배어있다. 이 지역의 자랑인 일본 청주 한 두 잔을 곁들이니 왕이 부럽지 않다.

차림의 끝무렵에 나오는 쌀밥은 이곳 요리의 진수다. 도쿄 긴자 요정의 주인들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꼽은 것은 산해진미의 요리가 아닌 바로 이 지역에서 생산한 쌀로 지은 밥이라고 한다. 일본 쌀 최고의 품종인 ‘고시히까리’, 그 중에서도 니가타의 우오누마 산을 최고로 치는데 바로 그 쌀로 지은 밥이 차려지는 것이다.

두어 시간의 여유로운 저녁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새 방 가운데 있던 탁자는 벽 쪽으로 밀려있고, 그 자리에 정갈한 이부자리가 깔려있다. 우리의 아랫목 구실을 하는, 발을 넣고 온기를 쬐는 탁자형 난방기구 고다츠에 발을 뻗고 앉았다. 미닫이 유리창 밖 정원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벚꽃 꽃잎 떨어지듯 한 송이 두 송이 눈꽃이 날렸다.

한아름씩 눈을 안고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전통 료칸의 정적에 귀를 기울인다. 저녁때 반주로 마신 술이 꽤 됐음에도 눈 풍경에 빠져든 정신은 말갛기만 하다.

이부자리에 들어가 유탄뽀(뜨거운 물을 담아 이불 속을 덮이는 용기)를 뒹굴이며 잠을 청하는데, 목간을 두들기며 ‘히노요우진’(불조심)을 외치는 늙수그레한 남정네의 탁한 음성이 긴 복도를 따라 번져온다. 목조건물이 많아 화재에 민감했던 옛 시절, 에도 시대의 일본 속으로 잠은 깊이 빠져들어갔다.

고급 서비스 만큼이나 가격이 높다. 저녁과 아침 식사를 포함한 1박 가격은 2인1실 기준 1인당 2만5,000~5만 엔. www.ryugon.co.jp 전화 81-25-772-3470

■ ‘설국’의 집필공간 다카한(高半)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니 설국이 펼쳐졌다”로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소설 <설국> 이 쓰여진 료칸이다. <설국> 은 주인공 시마무라가 게이샤인 고마코에게 끌려 흰 눈 덮인 온천장을 찾는 이야기다. 여기에서 아름다운 요코를 만나면서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 간에 묘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진다.

예전의 목조 건물이었던 료칸은 지금은 콘크리트 빌딩으로 변했다. 건물 2층에 가와바타가 묵었던 방을 재현해 놓았다. 가와바타는 “잡다한 일들을 잊을 수 있어 신선한 공상의 힘이 솟는다”고 이 방을 표현했다. 숙박료는 1인당 1만2,000~1만5,000 엔. 전화 81-25-784-3333

도보로 10분 거리인 시내의 설국관에는 가와바타의 친필 원고와 자료들이 전시돼 있고, 고마코의 방이 재현돼 있다.

■ 영주 행차 시 머물던 숙소 혼진(本陣)

에치고유자와의 가장 큰 스키장인 나에바 스키장 앞에 있는 전통 료칸이다. 에도 시대 때는 도쿠가와 막부에서 영주들을 관리하기 위한 산킨코타이(參勤交代) 제도가 있었다. 처자식을 에도에 남겨두고 영주들은 해마다 에도로 와서 통치자를 배알하게 한 것으로, 지방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교묘한 통제 방법이다.

영주가 에도로 가는 행차에는 최소 100명 이상, 많으면 3,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그 장거리 행차기간 영주가 묵는 숙소로 ‘혼진’과 같은 료칸이 탄생했다. 이 혼진은 370년 전 산킨코타이 시행과 함께 세워져 18대째 이어오고 있는 집이다. 숙박료는 1인당 2만4,000~2만8,000 엔. www.oyado-honjin.com 전화 81-25-789-2012

니가타=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니가타, 눈·물·사케의 고장

니가타는 물이 많은 동네다. 연간 강수량이 2,000mm를 넘는다. 겨울 강수량이 여름 강수량보다 많다. 즉 비보다 눈이 많다는 이야기.

니가타는 북서쪽만 바다에 접하고 있고 나머지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였다. 북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면 동해에서 만들어진 수증기가 산을 넘지 못하고 니가타에 온통 눈을 토해낸다. 겨울 내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소설 <설국> 의 제목 그대로 눈세상이 되는 곳이다. 많이 올 때는 적설량이 4m에 달한다는 눈의 고장이다.

이 눈이 녹아 일본에서 가장 긴 시나노강(367km)을 이뤄 일본 최고로 손꼽히는 쌀을 만들고, 그 쌀은 또한 일본 최고의 니가타 청주를 만들어낸다. 니가타 현 내에 청주를 만드는 양조장 수가 96개에 이른다니 ‘사케의 고장’이라 할 만하다.

도쿄에서 이어지는 신칸센의 에치고유자와역 건물에는 ‘폰슈칸’이라는 독특한 술 전시관이 있다. 니가타의 술과 그 술에 어울리는 음식 등을 모아놓은 곳이다.

이곳의 인기 코너는 술 시음장. 벽면 가득 아파트형의 술자판기가 설치돼 있다. 니가타 지역 양조장의 대표 술 100여가지가 나오는 기계다. 500엔을 내면 5개의 코인과 작은 술잔을 건네준다. 술잔을 대고 코인 하나를 넣으면 니혼슈(일본 청주)가 한 잔 나온다. 일본 청주 중 최고급으로 꼽는 ‘고시노캄바이(越乃寒梅)’의 부드러운 맛부터, 45도짜리 독한 ‘사무라이’ 등 다양한 술을 맛볼 수 있다.

시음장 옆에 있는 목욕탕의 온탕은 온천물에 일본술을 부은 술탕이다. 이 술탕은 모공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어 몸속의 노폐물을 빨리 밖으로 내보낸다고 한다. 입장료는 800엔.

■ 여행수첩

▲인천과 니가타를 잇는 직항 항공편이 매일 운항한다. 비행시간 약 2시간. 도쿄의 하네다 공항이나 나리타 공항을 이용, 신칸센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도쿄에서 에치고유자와까지는 신칸센으로 1시간10분 걸린다.

▲이오스 여행사는 일본어를 못해도 갈 수 있는 '류곤 료칸 자유여행' 패키지를 판매한다. 항공권, 류곤 료칸 2박(아침 저녁 식사 2회 및 점심 1회), 료칸여행 안내서(자체 제작), 여행자보험, 송영 서비스(에치고유자와 역-료칸)가 포함됐다. 111만원부터. (02)546-4674

▲하늘땅여행(www.skylandtour.comㆍ02-724-8226),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 02-753-0777), 참좋은여행(www.verygoodtour.com 02-2188-4000) 등은 나에바 등 에치고유자와 지역 스키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나에바스키장 3박4일 일정이 57만9,000원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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