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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의 눈이 되어' 노예 할아버지에게 날아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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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바람의 눈이 되어' 노예 할아버지에게 날아든 '사랑'

입력
2008.0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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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레사 까르데나스 지음ㆍ하정임 옮김 / 다른 발행ㆍ164쪽ㆍ1만원

넓고 넓은 열대의 초원. 끝도 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 자본의 맛을 들인 요즘 쿠바인들은 관광열차까지 다니게 한다지만 그곳은 슬픈 열대다.

쿠바를 대표하는 청소년 작가 떼레사 까르데나스는 모국의 사탕수수밭에 얽힌 슬픈 역사를 더듬는다. 식민지 시기, 스페인 통치자들은 농업국가 쿠바의 사탕수수밭 재배에 체력이 약한 원주민 인디오 만으로는 부족하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수입한다.

주인공은 사탕수수농장에서 다른 노예들의 도망을 막는 늙은 흑인노예 뻬르로 비에호(늙은 개라는 뜻). 그의 칠십 평생은 고된 노동과 백인 농장주들의 채찍질과 욕설에 시달리고, 도망가다 붙잡힌 동료들에게 가해지는 잔인한 사형(私刑)을 두 눈으로 목도 해야 했던 이름 그대로 ‘개 같은 인생’ 이었다. 쇠약해진 육신으로 죽음 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탈출을 꿈꿀 용기는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평생 마음 문을 닫고 살았던 주인공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늙은 노예 베이라를 만나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자유’의 희망도 언뜻 품어보지만 도망친 어린 노예가 자신의 집을 찾자 탈출을 도와주어야할지, 주인에게 알려야할지 고민에 빠진다.

베이라에 대한 마음이 사랑임을 깨닫고, 농장주인을 죽인 뒤 베이라와 어린 노예를 데리고 자유를 향한 여행을 감행하다가 주인공이 숨을 거둔다는 결말은 언뜻 평범하다.

그러나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노예의 비참한 삶을 묘사하는 작가의 비유적이고 함축적인 언어는 작품의 가치를 높인다.

“그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다른 세계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을 배웠다” “노예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가지고 태어나며 때로는 그 죽음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들이닥치기도 한다” “노예는 악취가 풍기는 고깃덩어리보다 못한 존재였다. 흑인은 한 조각의 석탄 덩어리에 불과했다” ….

청소년들에게 자유와 복속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물론이고 빼어난 문학성 만으로도 일독의 값어치가 충분하다. 까사 데 아메리카상 수상작. 감수자인 민용태 고려대 교수는 “참으로 쉬우면서 세계성 깊은 문학이 무어인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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