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석 지음 / 아트북스 발행ㆍ320쪽ㆍ1만6,000원
정말 그랬다. ‘우리 만화에도 이렇게 예술적이고 지적인 작품이 많구나!’
<만화가 사랑한 미술> 을 내놓은 만화이론가 박창석씨는 책에 소개한 참고 만화작품을 모두 국내 만화에서 선별한 이유를 “독자들이 우리 만화에도 이렇게 예술적이면서 독특한 만화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썼다. 만화가>
만화와 미술의 비교를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만화가 사랑한 미술> 은 선입견이 슬쩍 부끄러워질 정도로 읽고 보는 재미가 별나다. 만화가>
만화 이론과 미술사에 두루 밝은 저자는 만화를 읽는 방법으로 만화 속의 미술적 요소들을 찾아내고 미술작품을 닮거나 차용하거나 혹은 패러디한 만화들을 원작과 비교 감상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유명한 석판화 <절규> 와 조훈의 <덤벨 컬(dumbell curl)> 을 비교하는 식이다. 덤벨> 절규>
뭉크의 그림에서 세상과 단절하고자 하는 화가의 절박함은 조훈의 만화에서 절규 대신 몸짱 세태를 풍자하는 갈구의 이미지로 패러디된다. 민중미술가 오윤의 <사상체질도> 에서 볼 수 있는 거친 목판화기법은 성폭행 당한 소녀가 자살을 택하는 이야기를 담은 옥상헌의 만화 <16세>에서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드러내기 위해 절묘하게 차용된다. 사상체질도>
만화는 한번 보고 던져버리면 그만이라며 그저 재미로만 만화의 가치를 판단했던 사람이라면 책 갈피 마다 알뜰하게 담긴 만화 이론의 풍요함에 새삼 놀랄만하다. 그림과 달리 읽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만화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 장치이면서 만화의 말풍선 하나, 사소한 선 하나가 사실은 얼마나 치밀한 논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 알려준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은 생소하지만 신선하고 예술적인 아이디어와 재능이 넘치는 한국 만화가들의 작품을 수시로 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늘을 나는 종이비행기 처럼 자유를 꿈꾸지만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유흥업소 접대부의 일상을 다룬 박흥용의 <돼지의 날개> , 자아분열 혹은 일상에 대한 편집증을 다룬 이애림의 <파라노이아> , 남녀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주는 김수박의 <진실의 바다> 등의 만화들은 비록 몇 장면만 소개됐지만 저자의 친절한 해설에 힘입어 독특하고 기이한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해준다. 진실의> 파라노이아> 돼지의>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는 추천사에서 “서양 미술가들의 작품과 한국 만화가들의 만화를 일대일로 대응시켜 한국 만화의 예술성을 새롭게 탐색해냈다”고 썼다. 부록 ‘이 작가의 이 만화만은 꼭 보자!’는 책을 통해 한국 만화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고 흥분한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듯 하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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