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트레이더의 겁 없는 선물거래가 사상 최악의 금융사기극을 몰고 왔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SG)이 서른 한 살의 젊은 직원 제롬 케르비엘의 주식 선물거래 손실로 설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영국의 금융그룹 베어링이 내부 직원 닉 리슨의 선물거래 손실로 파산한 지 13년 만의 일이다. 손실 규모만도 71억2,000만 달러(약 6조8,000억원)로 베어링 사태의 5배나 돼 파문이 어디까지 튈지 가늠하기 어렵다.
25일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신이 전하는 케르비엘은 사내에서 특별하게 주목 받지 않았던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렇지만 사태 발생 하루 뒤 그의 이름은 구글에서 26번째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고 ‘프랑스판 닉 리슨’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프랑스 리옹에 있는 뤼미에르대학에서 재무학 석사 학위를 받은 케르비엘은 2000년 SG에 입사해 연봉 7만 5,000달러(약 6,900만원)를 받는 평범한 트레이더였다. 2005년 선물 거래팀에 배치받아 유럽의 주가지수를 대상으로 선물거래 업무를 맡았다.
그가 문제의 선물거래를 시작한 시점과 동기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케르비엘이 범행으로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가족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었으며 최근 여자 친구와 헤어져 정신적으로 충격에 빠진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선물거래는 한번 손실의 악순환에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빠져 나오기 어렵다”면서 “케르비엘은 위험 신호가 반짝이는 것을 알고서도 상사를 속이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케르비엘은 해커수준의 컴퓨터 실력으로 불법 거래를 오랫동안 숨겨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케르비엘의 주가 선물거래는 미래의 약속한 날짜에 미리 약정한 가격에 주식을 사거나 팔 것을 현재의 시점에서 계약하는 거래다. 케르비엘은 유럽 증시의 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대규모 매수 주문을 냈으나 미국발(發) 서브프라임모기지 (비우량주택담보대출) 위기로 유럽 주가가 폭락하면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케르비엘의 사기행각은 18일 또 다른 선물거래를 담당하는 직원이 은행측에 제보하면서 전모가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범행 수법보다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범행이 회사 내부에서 어떻게 발각되지 않았는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유럽 아마스 은행의 투자 담당 이온 발리는 “주가 선물거래는 리스크가 높아 회사마다 엄격한 내부 통제 시스템을 두고 있다”면서 “일개 트레이더가 71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선물 거래를 상사 허가 없이 비밀리에 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고 말했다. SG측은 “케르비엘은 2,000만 유로 이상을 다룰 수 없는 위치였지만 다른 거래인의 명의를 도용해 한도 이상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1995년 베어링 사태의 범인 닉 리슨은 외환, 주가 등 다양한 파생상품에 손을 댔지만 케르비엘은 주가 선물만을 했다는 차이가 있다. SG는 지난해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위기로 20억 5,000만 유로의 손실을 기록한 상태여서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베어링은 사태 발생 1개월이 지난 1995년 2월 파산했고 1달러에 네델란드 금융그룹 ING에 매각됐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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