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것은 행복한 행위일까? 사람들은 흔히 책은 마음의 양식이며 지혜의 보고라고 말한다. 이런 경구들 속에는 책이란 유익한 것이라는 전제가 놓여 있다.
하지만 한편 책은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책은 세상의 숨은 논리를 깨닫게 해준다. 문제는 삶이 숨기고 있는 논리는 대부분 아프고 지독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들은 대략 두 가지 정도의 역할을 한다.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낭만적 매개체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지독한 모순을 압축하는 대상이다. ‘러브레터’나 ‘세렌디피티’같은 영화 속에서 책은 지워졌던 기억을 되살리는 낭만적 매개물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영화들은 사랑의 영원성을 찬양하는 로맨스 영화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같은 책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매개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기에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작품 ‘판의 미로’는 책의 위험성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의 현실은 잔혹하다. 숲 속에 숨어 있는 반정부군들은 마취제도 없이 환부를 도려내고, 군인인 아버지는 잔인하게 그들을 처형한다. 소녀가 잔혹한 현실을 견디는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환상적인 이야기로 가득한 책을 읽으며 소녀는 새아버지, 전쟁, 아픈 어머니와 같은 고통을 잊으려 한다. 그런데 소녀가 읽는 책 속의 상황들은 현실만큼이나 처참하다. 책 속의 이야기는 소녀가 감당하기 어려운 많은 일들을 요구한다. 소녀에게 책 속의 환상은 현실보다 더 가혹하다.
책을 읽는다는 것, 특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무심히 흘러가는 삶을 멈추게 한다. 문제는 때로는 이 멈춤이 삶을 위해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소설보다 이상한’이라는 작품에는 우연찮게 자신의 삶을 중계하는 서술자와 만나는 남자가 등장한다. 목소리를 듣고 난 후 남자의 삶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책은 가볍게 읽는다면 매개에 불과하지만, 진중히 다가갈 때 인생의 지침을 바꿔놓는 날카로운 키스가 된다.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물건, 그것이 바로 책이다.
강유정(문학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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