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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정치논평] 제정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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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정치논평] 제정구가 그립다

입력
2008.01.2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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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가 보여주듯이 민주화운동진영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자니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바로 고 제정구 의원이다. 민주화진영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배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박정희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되어 판자촌으로 들어가 빈민운동을 했다. 그래서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이후 87년 양김의 분열에 분노해 독자 정당을 만들어 정계에 투신하지만 실패한다.

3당 통합 후 생겨난 통합야당에 합류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당을 깨면서 정계복귀하자 "원칙을 버리고 재선이 되느니 초선으로 장렬히 전사하겠다"는 명언을 남기고 노무현 대통령 등과 함께 3김정치 청산을 위한 독자노선을 걸었다.

■ 부드러운 자기성찰의 지도자

97년 대선 때도 노 대통령 등이 김대중 진영에 합류한 반면 그는 3김정치, 특히 유신세력인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의 DJP연대에 반대해 이회창 진영을 선택했다. 논쟁적일 수 있는 이 결정 뒤 곧 병으로 그는 유명을 달리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민주화진영을 위기로 몰고 간 도덕적 타락, 오만, 독선 등과 거리가 멀고 다른 덕목을 가진 투사였다는 점이다. 첫째, 청빈과 비움이다. 그는 "인간은 버리기 위해 태어났다"는 신조를 갖고 판자촌에서 빈민들과 살며 '가진 것 없는 큰 자유'를 누리며 살았다.

그같은 비움이 있었기에 초선으로 전사하겠다는 용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민주화진영도 작은 기득권에 연연하고 있다.

둘째, 외유내강의 자세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노 대통령의 경우 내용은 보수적이면서 스타일만 급진적이어서 불필요한 분란만 일으키는 '스타일의 급진주의자'였다.

민주화운동도 많은 경우 관념적 급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빈민과 함께 살 정도로 급진적으로 살면서도 언행은 부드러웠다. 깊은 강은 조용히 흐르는 법이다.

셋째, 국민과 민중을 대상화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화진영은 민중과 국민을 이야기했지만 이들을 대상화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은 21세기인데 국민은 19세기"라는 식으로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제 의원은 민중을 잡초로 보고 품종 개량시키려는 먹물의 태도를 버리고 "자신도 잡초임을 깨달아 겸손해지고 함께 섞여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천했다

넷째로 부단한 자기성찰이다. 제 의원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언론사 특파원이 "재야에서 국회의원이 된 뒤 무엇하고 투쟁하느냐"고 묻자 "나 자신과 투쟁합니다"고 답했다.

"독재와 싸우다 보니 나 자신도 나도 모르게 독재를 닮아가고 있다. 내 속의 그 독재와 그 권위주의를 보고, 그 야심들을 감시하고 찾아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나아가 민주화 진영이 이 같은 자기성찰을 계속했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민주화진영은 그를 본받도록

다섯째 공동체정신과 연대의식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정책으로 양극화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정신이다.

그러나 일반국민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운동까지도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연대의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오래 전에 그는 "정의와 연대의식은 동전의 양면이다. 연대의식이 없는 정의란 전두환 정권처럼 가장 추악한 불의와 폭력이 되고 만다"고 경고했다.

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사회과학 공부가 아니라 더 높은 상상력과 더 깊은 성실성"이며 '물질의 눈', '물리적 힘의 눈', '따로 살기, 끼리끼리 살기의 눈'에서 '사람의 눈', '생명의 눈', '함께 살기의 눈', '가난의 눈'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정곡을 찌른 것이다.

<저작권자>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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