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샤오궁 지음, 심규호ㆍ유소영 옮김 / 민음사 발행(전2권)ㆍ336, 310쪽ㆍ각권 1만원
<마교사전> 은 중국 문화혁명기에 후난(湖南ㆍ호남)성 미뤄(汨羅ㆍ멱라)현의 산골 마을 마차오(馬橋ㆍ마교)로 하방된 지식인 청년-작가의 실제 경험과 일치한다-을 화자로 삼고 있다. 마교사전>
문혁이 80년대 이후 중국 소설의 단골소재인 만큼 그리 특출난 데 없는 소설이라 넘겨짚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샤오궁(韓少功ㆍ55)의 대표작이자 첫 한국어 번역작인 이 소설은 여러모로 범상치 않다.
115개의 마차오 사투리 어휘를 표제어로 사전의 꼴을 갖춘 구성부터 그렇다. 사투리를 표준어로 옮기는 차원의 무미한 사전이 아니다. 초나라 재상 굴원이 자결한 곳으로 기억되는 미뤄현은 오랫동안 외부와 단절된 채 독자적 역사와 문화를 꾸려왔고, 말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마차오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을 통해 얼핏 기표(記標)와 기의(記意)가 뒤죽박죽 연결된 듯 보이는 이곳 사투리의 어원과 용법을 꼼꼼히 밝힌다. 이것은 그대로 115편의 흥미로운 장편(掌篇)이다.
일테면 마차오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모두 ‘달다(甛)’고 표현한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중국 땅에서 미각에 관한 어휘가 이다지 빈약하다니! ‘나’는 곧 그 이유를 알아챈다.
“미각에 대한 정밀하고 풍부한 어휘들이 배고픈 우리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1권 37쪽) 이곳 사람들이 대약진운동(50, 60년대 추진된 집단경제체제)을 ‘식당을 하던 때’, 군대를 ‘양식을 먹는 곳’, 마을 간부 회의를 ‘개고기를 먹는 일’로 일컫는 것도 이들이 역사와 사회를 “위장을 통해 기억하기 때문”(31쪽)이다.
마차오 노인들이 “건강(健)한가” 대신 “아직도 천한가(賤)”라고 안부를 묻는 까닭을 ‘나’는 건(健)이 이곳 사투리로 천(賤)과 같은 발음으로 읽히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연원이 아니라 뒤틀린 채 굳어진 말이 인간에게 미치는 힘이다. ‘나’는 증손자까지 앞서 보낸 걸 부끄럽게 여기면서 맹수의 습격을 요행으로 피한 걸 자책하는 노인의 일화를 전하며 이를 방증한다.
‘깨닫다(覺)’를 ‘우둔하다’, ‘잠자다(睡)’를 ‘총명하다’로 엇바꿔 쓰는 것에 대해 ‘나’는 “마교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독특한 은유를 할 언어적 권리가 있음을 용인해야만 한다”고 옹호한다.
그러면서 마을의 무위도식자 ‘마명’을 가리킨다. “대약진운동, 반우파운동, 문화대혁명 등등… 수많은 정열이 결과적으로 죄악이 되고 말았을 때” 마명 같은 방관자야말로 “두 손에 피를 묻힌 적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87쪽) 기표-기의의 엇바꿈이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토록 훌륭히 포착한다.
80년대 심근(尋根ㆍ뿌리 찾기) 문학을 주창, 이념 중심의 중국 문단에 균열을 내며 중량감 있는 작가로 부상한 한샤오궁은 96년 발표한 이 소설에 자신의 세계관, 언어관, 문학관을 집약한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자기 입장을 직접 드러내는 한 대목. “실제 삶은… (전통적) 소설처럼 주된 줄거리가 인과관계에 의해 주도되는 방식과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늘 주류를 이루는 인과에서 뛰쳐나와 언뜻 보기에는 전혀 의미가 없는 사물을 바라보곤 했다.”(120-121쪽)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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