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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조르디 갈세란의 현대극 '최종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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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조르디 갈세란의 현대극 '최종면접'

입력
2008.01.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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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사는 모습은 어딜 가나 비슷한 모양이다. 스페인 작가 조르디 갈세란이 쓴 현대극 <최종면접> (원제: 그뢴홀름 방법론)은 ‘가치(value)’와 ‘값어치(price)’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값을 증명해야 하는 현대인의 생존방식의 치열한 현장을 보여준다. 연극은 일종의 리얼리티쇼, 서바이벌 게임, 심리극을 합체한다.

기업 시스템의 농락과 감시사회의 불쾌한 카메라 눈앞에서 능력을 최대한 과시하되 내면은 최대한 감춰야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 순간 면접시험은 치열해진다. 관객은 무대를 지켜보며 조마조마해 하다 낄낄거리고 거부감과 공감, 의혹 속에 자신을 자꾸만 대입시키게 된다.

다국적 기업 데끼아의 면접실, 어느 날 이직을 희망하는 4인의 남녀가 최종면접에 참가한다. 엘리베이터는 이들을 낯선 공간에 떨어트리고 메시지함을 통해 과제가 전달된다. 그들 중 누군가는 회사에 소속된 면접관이다. 그들은 속임수와 기만, 진실과 거짓의 폭로전 속에서 서로의 정체를 탐문해간다.

다변하는 기업환경과 극한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시험한다는 명목하에 경쟁자를 제거해야만 하는 것. 누구도 믿을 수 없다. 타인의 약점과 상처를 헤집고, 연한 부분을 찾아내 공격해야 살아남는다. 이 정글 바깥은 도태라는 까마득한 절벽뿐이다. 실험쥐가 되어버린 쥐덫 같은 현실, 사육됨을 알면서도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다.

연극엔 반전이 있고, 쓰디쓴 현실의 음화에 봉착한다. 온갖 정신적 역경과 모험을 겪으며 심리적 이전투구를 수행하고 살아남은 주인공은 이제 영웅인가? 결말이 흥미로운데,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전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모든 것을 빼앗기거나 내부로부터 붕괴를 겪지 않는다.

그는 속히 세속적 장터로 귀환한다. 다시 일당을 벌고, 월급을 받으며 연봉을 협상해갈 것이다. 작가가 묘파하고 있는 삶의 구조와 테두리는 비극적인데 상황에 대한 반응은 희극적이다.

자본주의의 구조와 일상 속에서 타자들 간의 살아남기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 연극은 살풍경한 현대적 삶을 쉽고 명확하게 그려간다.

어눌함과 냉철함 양극단을 오가는 배우 안현, 신랄하면서도 냉소적인 희생양 역할을 맡은 이우진, 커리어우먼의 당당함과 현대인의 연약한 부유감(浮遊感) 양면을 연기한 김정은, 성전환을 희망하는 섬세한 남자 역 우승권 등 네 명의 연기앙상블과 세부적 리얼리티를 찾아낸 눈밝은 연출은 자본주의 경쟁체제에 나포된 현대인의 우스꽝스러운 초상을 속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극단 주변인들, 서충식 연출, 2월 3일까지 블랙박스 씨어터.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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