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 3학년에게 적용될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응시 과목을 5개로 축소하겠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발표에 대해 찬반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인수위는 탐구영역(사회, 과학, 직업)과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 선택과목을 2개로 줄여 언어와 외국어(영어), 수리영역 등 5개 과목으로만 수능을 치를 경우 학습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택과목이 줄면 특정 주요 과목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해 학교 공교육은 무너질 것”이라는 반대 목소리도 힘을 얻어가고 있다.
"입시부담 틀림없이 준다"
수능 과목 축소가 입시부담을 완화시키는데 ‘특효’가 있을 것이라는 논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과목이 줄면 수능 준비에 투입되는 공부량도 당연히 감소한다는 것이다. 이명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실장은 “수능 과목을 줄인다는 것 만으로도 기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그러나 “다만 수능의 전형 비중이 줄고, 쉽게 출제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과목 축소가 선택과목별 난이도 논란을 해결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선택 과목에 따라 난이도가 들쭉날쭉하는 공정성 시비도 함께 풀린다는 기대다. 24일 교총과 한국교육평가학회 주최로 열린 ‘한국 교육평가정책의 현안과 과제’ 토론회에서 반재천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는 “현 수능체제에서는 선택과목별 난이도 차에 따른 유ㆍ불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과목을 대폭 줄이면 불공정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암기식 교육을 벗어나 심화 학습도 가능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박부권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목을 축소해도 입시 부담은 줄어들지 않지만, 특정 과목에 몰입할 수 있어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육 파행"
그러나 일선 교사들은 부정적 의견들이 더 많다. 가뜩이나 학교 교육현장에서 홀대 받는 사회·과학 과목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는 것은 물론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의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다. 한양대사대 부속고 물리교사 이정민씨는 “물리는 지금도 학생들이 기피하는 과목”이라며 “과목이 줄면 자연계의 기초지식을 대학가서 배우게 되는 웃지못할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걱정했다.
입시부담 감소 전망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이영덕 대성학원 평가이사는 “8개 과목을 보나 5개 과목을 보나 경쟁체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학생들의 전체 학습량은 줄어들 수 없다”고 단언했다. 사교육비 절감 효과 또한 미지수다. 사회·과학 과목의 경우 학원 수강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과목이 줄어도 별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인자 유웨이중앙교육 기획홍보팀장은 “전체 사교육 시장 매출에서 탐구영역은 불과 10%가량만 차지하고 있다”며 “수능 과목 축소는 큰 변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능 과목을 줄이기에 앞서 공교육 파행을 막기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수위가 입시부담 경감 목표에만 매달려 정작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과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사회·과학교사 '부글부글'
“학생 수가 적어 수업도 파행이 될 판인데 영어수업까지 하라니요. 당치도 않은 발상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차기 정부 교육 정책에 대해 일선 고교 사회·과학 과목 교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한 톤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이들 과목 교사들은 인수위의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수능과 내신 반영 대학별 자율화→ 수능 과목 축소→ 대학별 신입생 선발 완전 자율화)을 ‘재앙’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012학년도 대입시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사회·과학 탐구 영역과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 선택과목이 현재 최대 4개에서 2개로 줄어, 말그대로 직격탄을 맞게 됐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어 과목 외 일반 과목도 영어로 수업을 하게 하는 영어몰입교육 방안도 이들 교사들에게는 이중고나 다름없게됐다.
이들은 이구 동성으로 “점수 따기에 유리한 특정 과목 편중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 A고 물리교사 B씨는 “수능 과목이 축소되면 쉬운 과목으로 학생들이 더 몰리게 될 게 뻔한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생각만 해도 눈 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들은 더 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수능 과목에서 빠지면 수업 받는 학생도 자연 줄게 돼 재계약이 더욱 힘들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기간제 교사 C씨는 “인수위 발표 후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살아 남기 위해 부전공 연수과정을 이수할 생각”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불만도 폭발 직전이다. 서울 D고 국사교사 김모씨는 “읽기와 문법 위주로 공부한 교사들이 영어로 자연스럽게 수업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며 “영어에 익숙치 않으니 수업내용보다 말하기에 치중해 결국 부실 수업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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