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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커신 감독, 첫 액션블록버스터 '명장'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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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커신 감독, 첫 액션블록버스터 '명장'을 말하다

입력
2008.01.2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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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해지면 지루하기 마련이죠. 잘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방심하고 더 이상 도전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술가에게 가장 큰 독(毒)이라고 생각합니다.”

<첨밀밀> (1996년)의 천커신(陳價辛ㆍ47) 감독이 자신의 첫번째 액션 블록버스터 <명장> 의 개봉을 앞두고 방한했다. 섬세한 시선으로 멜로드라마를 그려왔던 그가 15만 엑스트라의 함성 속에 피와 살점이 튀는 액션극의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으로 치면 <봄날은 간다> 의 허진호 감독이 <태극기 휘날리며> 를 연출한 셈. 변신의 이유가 궁금했다.

“같은 걸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에요. 똑같은 걸 계속 만들어 성공할 수 있다면 그 열매만 즐기며 살 수도 있겠죠. 하지만 한 가지로 성공한 다음에, 다시 그걸 하려면 잘 되는 것 같지도 않아요.”

그런데 왜 하필 액션일까. 짧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내가 ‘홍콩 감독’이기 때문이죠. 마치 중국인이 중국어로 이야기하듯이, 홍콩 감독이 액션을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영화 시작하고) 20년 동안, 액션은 호주머니 한쪽에 항상 넣고 있던 장르에요.”

<명장> 은 최근 중국에서 붐을 이루는 블록버스터 액션 시대극의 외피를 입고 있다. 톱스타를 캐스팅하고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 부어 웅장했던 대륙의 스케일을 복원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횡행하고 티켓값이 비싼 중국 시장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비주얼이 풍부한 영화가 아니면 관객들이 굳이 극장을 찾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의 환영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비판에서, 이 영화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물론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시대극이 현대물에 비해 당국의 검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도 한 이유죠. 그러나 중국 블록버스터가 할리우드의 그것처럼 철저히 흥행을 위한 상품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 같은 영화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뭔가 ‘가치’를 담으려 한 흔적이 분명히 있어요. 중국영화는 블록버스터의 틀을 취하더라도 진실성을 포기하지 않아요.”

천 감독의 목소리는 <명장> 이 다른 중국형 블록버스터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대목에서 다소 높아졌다.

“이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와 스타배우, 스케일 등 외형적 요소에서 오는 압박감에서 길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다른 블록버스터 시대극의 액션과 스토리는 모두 가짜(fake)라고 할 수 있어요. 유려한 무술동작과 화려한 의상,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면을 지극히 화려하게 치장했죠. 하지만 난 그런 걸 위선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철저히 사실적으로 만들었어요. 인물들의 표정은 어둡고, 갑옷은 더럽고, 싸움도 화려함보다는 처절함이 느껴지죠.”

중국 영화계는 ‘6세대’로 불리는 젊은 감독들을 빼면 명망 있는 감독들이 대부분 역사 판타지에 빠져 있다. 천 감독은 이 척박한 환경에서 그의 ‘드라마’를 계속할 나름의 타협점을 찾고 있는 듯했다.

“감독이 도박사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잃기(영화적 가치를 표출하기) 위해서는, 칩(톱스타, 사극이라는 장르, 화려한 비주얼)을 먼저 모아야 하는 거죠. 아무런 제약 없이 영화를 할 수 있다면? 음… 그렇다면 <첨밀밀> 규모를 가지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점점 불가능해져서….”

■ '명장' 어떤 영화인가

19세기 중엽의 청나라. 핍박을 못 이긴 백성들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고 14년에 걸친 처참한 전쟁이 계속된다. 부하들을 모두 잃고 은신하던 청의 장수 방청운(리롄제)은 도적단 우두머리 조이호(류더화) 강오양(진청우)과 의형제를 맺고, '산'군을 조직해 난의 평정에 나선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맞고도 아무 말 못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던 방청운은, 그러나 권력의 중심에 다가갈수록 가슴 속 야망도 커져간다. 동정심과 의협심이 강한 조이호는 방청운의 변화에 거리감을 느끼고, 두 형의 갈등에 괴로워하던 강오양은 결국 "피의 맹세"를 지키는 길을 택한다.

무협 스펙터클의 틀을 취하고 있으나, 영화의 무게중심은 비주얼보다 인물들이 빚어내는 드라마에 실려 있다. 조이호의 아내와 방청운 사이의 미묘한 감정에는, 그간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줬던 천 감독 특유의 세밀함이 녹아 있다. 장쾌하면서도 허무맹랑하지 않은 액션이 전쟁의 사실적 질감을 잘 살려냈다. 31일 개봉. 18세 관람가.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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