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누대에 걸쳐 유명 정치인을 배출하는 정치 명문가가 많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 아베 신조ㆍ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간사장 등의 가문이 대표적이다.
대개 선거구를 아버지나 할아버지 등의 친족에게서 물려 받아 출발부터 빵빵하게 정치 경력을 쌓는다. 이런 정치 세습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귀족가문 봉건영주 전통에 뿌리가 있는 탓인지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가문의 명예와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과 자세가 능력 있는 정치인으로의 성장을 돕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 우리나라에도 대를 이은 정치인들이 늘고 있다. 한나라당 입당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6선의 조순형 의원 가문이 원조격이다. 선친은 1960년 제4대 대선 때 유력한 야당 후보로 나섰다가 애석하게 도중에 타계한 조병옥 박사이고, 고 조윤형 전 국회부의장이 친형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대철 상임고문, 한나라당의 유승민 이종구 의원, 최근 한나라당에 입당한 정진석 의원, 정우택 충북도지사 등도 당대에 이름을 날린 정치인 집안 출신이다. 하지만 헌정사가 일천하고 격동의 시대를 거친 탓인지 우리사회는 이들 가문을 정치명문가로 칭하는 데 인색하다.
▦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아버지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출마를 선언하고 한나라당 공천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의 금배지 도전은 2002년 8ㆍ8재보선 마산 합포, 2004년 총선 거제 출마 시도에 이어 세 번째다. "정치 입문의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서는 비장한 결의도 느껴진다.
박근혜 의원이 선친 연고지인 대구 달성에서 3선을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아들 홍일ㆍ홍업씨가 아버지 고향에서 금배지를 단 사례도 있으니 자신이라고 못할 것 없다는 생각일 게다. 아들에게 대를 잇게 해 정치 명문가를 이루려는 YS의 소망도 작용했을 테고.
▦ 김씨가 공천을 따낸다면야 금배지는 이미 단 거나 마찬가지겠으나 공천 구도가 만만치 않다. 아버지가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적극 밀어 주었으니 이 당선인측이 자신을 지원해 줄 것을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현재 지역 현역인 3선의 김기춘 의원이 박근혜 의원 진영의 거물이어서 자칫 이-박 대리전 양상으로 번지면 결과를 장담키 어렵다.
YS 대통령 시절 '소통령'으로 군림했다는 인식이나 알선수재 등의 부패스캔들에도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입신하려 한다는 따가운 국민시선도 부담이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 명문가의 길은 멀고 험하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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