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진로를 결정할 중대분수령으로 엄청난 격돌이 우려됐던 이명박 당선인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23일 회동에서 두 사람은 모두 웃는 낯으로 자리를 떠났다. 18대 총선 공천 문제로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는 사태 수습 쪽에 무게를 둔 듯한 분위기였다. 양측의 사전 정지작업이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짐작케 했다.
이날 회동은 이 당선인 특사로 중국에 다녀온 박 전 대표가 방중 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이 당선인은 통의동 당선인 집무실을 찾은 박 전 대표에게 "고생했다. 사진 잘 나오더라. 중국어 발음도 좋고. 정말 수고 많았다"며 박 전 대표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에 박 전 대표는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비롯한 여러 최고 지도자들께 이 당선인의 뜻을 잘 전달했다.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악수를 하고 나서 잠시 머뭇거리자 배석한 박 전 대표 측 유정복 의원이 "두 분 옷 색깔이 잘 맞는 것 같다"라고 어색한 분위기를 띄웠다. 이에 이 당선인은 웃으며 "가깝게 해서 악수하자. 그래야… 세상이 흉을 봐 사서…"라며 다시 한번 손을 맞잡은 뒤 박 전 대표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 당선인은 중국 현지에서 열린 박 전 대표와 한국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언급하며 "지금 한창 한국 기업인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데 타이밍이 잘 맞은 것 같다"고 했고, 박 전 대표는 "기업인들의 애로점을 충분히 듣고 다 적어 왔다"고 말했다. 이어 유 의원이 "박 전 대표를 특사로 보낸 것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고 하자 이 당선인은 "내가 그걸 노린 거다. 미국 일본과 관계를 강화한다니 중국이 굉장히 긴장했을 텐데 이번에 다 해소됐다"고 맞장구를 쳤다.
35분 간 진행된 공개 회동에 이어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는 배석자 없이 20분 간 비공개 회동을 가졌다.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회동 후 박 전 대표의 반응은 화합 쪽으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공천은 당에서 원칙과 기준을 가지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이 당선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공천은 강재섭 대표가 기준을 갖고 공정하게 하겠다고 했으니 우리도 최대한 돕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공천 문제에 이견이 없었느냐'는 질문에 "(서로) 공감했다. 자꾸 이야기하면 또…"라고 언급을 삼갔다. 박 전 대표는 '총리 등 조각 문제를 논의했냐'고 묻자 "안 했다"고 짧게 답했다.
유 의원은 "회동에서 공천심사위 구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며 "갈등해소 차원인지는 모르나 서로 신뢰하는 측면에서 대화가 오간 것은 맞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 당선인이 박 전 대표에게 '베이징(北京) 올림픽에 같이 가자. 중국 특사단에게 한턱 내겠다'고 제안했다"며 "오늘 회동은 시종 좋은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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