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정몽준 의원 등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대미 특사단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면담이 22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성사된 데에는 한국의 ‘이명박 정부’출범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부시 대통령은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특사단의 면담 요청을 거절할 수도 있었고 그렇게 해도 큰 외교적 결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특사단을 만나고 있던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 방에 들르는 형식을 빌어 특사단을 면담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장관 등이 백악관에 왔을 때 이러한 형식으로 면담을 허용한 경우가 더러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미 대통령이 아직 정식으로 취임하지 않은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특사를 만난 전례는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외교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이던 시절, 특사단으로 방미한 정대철 전 의원 등의 부시 대통령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정 전 의원 등은 딕 체니 부통령에게 노 당선자의 친서를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미측은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도 22일 아침까지 면담 성사에 확답을 주지 않아 특사단이 이날 오전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을 만났을 때에도 우리측은 다시 한번 강력한 면담 요청을 전달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부시 대통령이 중요한 선례를 만들면서까지 이 당선인과 한국의 새 정부에 성의를 보인 이유는 부시 대통령과 특사단이 나눈 대화 내용에 잘 드러나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강화 필요성을 언급했고 북핵 문제에 있어서도 한미가 보다 긴밀히 공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선 한때 노 대통령과‘서로 통한다’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으나 실상은 현재의 한미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 확인된다.
미측은 이번 특사단에게 노 대통령 정부 하에서‘그 동안 한국이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한미간 현안에 대해 이런 저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해’상당한 아쉬움이 있었음을 집중적으로 토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한미관계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한미간 공조 강화를 강조한 것은 현재로서는 ‘한국이 좀더 미국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미 간에 보다 진전된 새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지금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정 의원 등 특사단이 한국군으로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시기와 관련해 미측에 재협상을 요구하고 싶어도 이번엔 ‘일단 덮어두기’로 한 것에서도 새로운 대화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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