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을 확정하고, 학생선발권을 사실상 대학으로 100% 넘김에 따라 각 대학들은 이를 뒷받침할 후속 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당장 대학수학능력시험 등급제가 보완되는 2009학년도 대입 전형을 준비하는 일이 급선무다. 수능 성적 공개 방식(등급, 표준점수, 백분위)은 2007학년도와 동일하지만, 수능 및 학교생활기록부(내신) 반영비율이 자율화해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낼 필요성이 커졌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총장으로 재직 중인 숙명여대가 ‘정시 논술고사 폐지, 학생부 반영비율 20%미만’의 전형기본계획을 발 빠르게 발표했지만 많은 대학들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이다.
다만 대다수 대학들은 2008학년도와 달리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내부적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험생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009학년도 전형에 획기적인 변화는 주지 않겠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각 대학들은 전형과 관련한 별도의 위원회와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2월 중이나 늦어도 3월초까지 2009학년도 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 정시 논술 폐지ㆍ내신 축소
서울 지역 주요 대학들은 ‘수시 논술고사 유지, 정시 논술 폐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등급제 보완으로 수능의 변별력이 어느 정도 확보된 만큼 정시 논술의 필요성이 약화됐다는 인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시 내신 반영 비율에 대해서는 “결정된 것이 아직 없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히는 대학이 많지만 대부분 ‘축소’쪽에 기울어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정시 논술은 치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표준점수와 백분위 만으로도 학생선발이 가능하다”는 말로 정시 논술 폐지를 기정 사실화 했다. 논술을 통한 변별력 확보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내신 반영 비율의 경우 “전혀 결정된 바가 없다”고 말해 내부적으로 대폭 줄이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화여대도 정시 논술 폐지쪽으로 전형안을 논의 중이다. 황규호 입학처장은 “내신 반영비율은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성균관대는 약간 신중한 태도다. 성재호 입학처장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험생들에게 추가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그러나 논술 폐지는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대의 경우 수시 논술은 유지하되 정시 논술은 없앨 방침이며, 한양대도 정시 논술 폐지를 검토 중이다. 차경준 한양대 입학처장은 “수능의 난이도가 높아지면 논술을 안 볼 수 있다”며 “특히 자연계는 논술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경희대는 2007학년도처럼 인문계 논술 비중을 줄이고 자연계 논술을 치르지 않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시 논술폐지에 유보적인 대학도 있다. 고려대는 수시에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정시는 수능 표준점수를 활용한다는 기본 방침만 섰을 뿐 정시 논술 폐지여부는 고민 중이다. 서울대는 “전형안의 개선과 관련해 검토되거나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밝혔다.
■ 학생부 우선선발 확대
지난해 정시모집 논술고사에서 일부 대학들은 교과과정을 벗어난 지문을 제시해 “사실상 본고사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주요 대학의 경우 대입 자율화가 이뤄지면 수학과 과학 문제 등에 영어지문을 제시, 예전의 본고사 효과를 볼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대다수 대학들은 논술의 본고사화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이 많다. “본고사를 실시하면 사교육 열풍을 조장하고 공교육을 무력화 시킨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수시 논술의 경우 수험생들이 충분히 준비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영어지문을 제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이화여대 한양대도 수험생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영어지문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황규호 이화여대 입학처장은 “수시 논술의 경우 고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낼 것”이라고 말해 논술의 본고사화 우려를 불식시켰다.
정시가 ‘수능 비중 확대, 논술 및 낸신 반영 축소’로 가닥을 잡고 있다면, 수시는 학생부 우선전형을 확대하는 분위기다. 서강대는 수시 정원 중 학생부 우선전형 선발 비율을 지난해(5%) 보다 2%포인트 늘린 7%로 확대키로 했다.
한양대도 지난해보다 학생부 우선전형 선발 인원을 2~3배 늘릴 계획이며, 중앙대도 수시 정원 중 5~10%는 학생부 우선전형에 배정할 예정이다. 이화여대도 학생부 우선전형 확대를 적극 검토 중이다. 수험생들은 정시 내신 반영비율이 줄어들어도 학생부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상위권 대학과 달리 중·하위권 대학과 지방대는 2009학년도 전형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 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들 대학들은 주요 대학들이 수능 위주로 입시 전형을 짤 경우 우수학생을 상당수 뺏길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이 때문에 주요 대학의 입시 전형안이 나오면 전형안을 마련하겠다는 대학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방대 관계자는 “주요 대학의 전형안이 전체 입시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 관망하고 있다”며 “그렇더라도 2009학년도 전형이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대교협 "바쁘다 바빠"
뚜껑이 열린 차기 정부의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엄청난 힘을 실어주게 됐다.
대교협은 대입 관리 업무 외에 대학 간 이해관계 조정과 본고사 실시 금지 등 ‘자율 규제’ 권한을 덤으로 받았다. 사실상 교육인적자원부의 고유 권한이었던 정책과 규제의 칼자루를 모두 쥐게 된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공식 발표로 대교협의 업무 인계 및 추진에는 탄력이 붙게 됐다. 23일 대교협은 실무 책임자들을 중심으로 전체 회의를 비롯해 분과별 모임을 수시로 갖는 등 분주한 모습이었다.
2009학년도 대입 전형계획 수립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대교협은 수능등급제 폐지에 따른 수험생과 학부모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3월 말까지 내년 입시 전형요강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2009학년도 입시안은 당초 교육부 계획을 토대로 마련된 것이어서 큰 문제점은 없었지만, 대학들이 내년 입시부터 수능과 학생부 등 전형요소를 자율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돼 자료 취합 및 전형계획심의위원회 개최 등 일정이 촉박한 상황이다.
강희돈 대교협 학사지원부장은 “그 동안 전형요소 반영에 관한 법적 기준은 없었지만 교육부가 반영비율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등 사실상 제재를 해왔다”며 “각 대학의 전형안에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종합적인 계획을 공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업무 이양의 중추 역할을 하게 될 ‘대입자율화추진 태스크포스팀’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TF팀은 이미 지난달 말 강병운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장을 위원장으로 실무진 7명과 외부 인사 4명 등 총 11명으로 발족했으나, 그 동안 교육부로부터 넘겨받을 업무 범위에 대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대교협 차원의 입시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TF팀은 이르면 내달 말까지 ▦인력 및 조직 개편 ▦예산 확보 ▦대학간 이해 조정 등 핵심 업무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대교협은 업무 확대로 지금 보다 2, 3배 이상의 인력 확충이 불가피하다고 보고있다. 이에 따라 신규 충원은 물론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해 교육부에서 관련 인원을 파견받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 대교협 대입업무 전담 인력은 10명도 안된다. 서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로의 사무실 이전도 확정됐다.
핵심 업무였던 대입 관련 업무를 대교협으로 넘겨주게 된 교육부는 맥빠진 분위기였다. 대부분 직원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위축된 표정이 역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예상됐던 내용이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용한 편”이라며 “업무를 대교협에 잘 이양해 차기 정부 정책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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