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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과외, 학원, 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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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과외, 학원, 탈세

입력
2008.01.23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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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대학교 논술고사는 눈이 오는 바람에 시험 시작이 한 시간 늦춰졌다. 그 때 벌써 기민한 학원에서는 고사장으로 강사를 급파했다. 늦춰진 1시간 동안 다시 한번 수강생들을 모아놓고 논술 잘 쓰는 방략을 강의했다. 이러니 학부모들이 돈봉투를 싸들고 학원가로 치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울대는 1차 합격자를 거르는 데는 수능점수를 참고했지만 최종 합격자는 내신 논술 면접으로 가린다. 면접 역시 인성파악이 아니라 구술논술이니 논술의 비중이 절반이다.

논술은 현재 공교육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학원과 과외가 활황이다. 서울대보다는 비중이 낮지만 여러 대학이 고등학교에서 못 배우는 논술을 입시과목으로 활용한다. 이미 끝난 수시에서는 대학마다 논술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 현금으로 내 달라는 논술학원

이 때문에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의 콧대는 한껏 높았다. 입시를 앞두고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을 골라 받을 정도였다. 골라 받는 기준은 학생의 내신이나 수능성적이기도 하지만 현금동원력이 필수적이었다. 카드가 아니라 현금으로 학원비를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학원이 수두룩했다. 현금영수증? 물론 주지 않는다.

학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외는 처음부터 카드 거래가 되지 않는다. 현금영수증도 기대할 수 없다. 팀별로 수백만원을 받는 고액과외는 물론이고 수십만원을 받는 대학생 개인과외도 이 점은 똑같다.

학비를 버는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라면 이해하겠지만 소액과외 뒤에는 거대한 기업형 과외알선업체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소액과외 강사들이 현금으로 교육비를 받으면 그 뒤에 있는 과외알선업체도 징세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한국의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업을 좌지우지하게 되니 학생들끼리의 정정당당한 경쟁을 막는다는 문제가 가장 크지만, 그 자체가 지하경제의 거대한 블랙홀을 형성한다는 문제도 그 못지않게 심각하다.

카드와 현금영수증 제도의 시행으로 지하경제의 규모가 줄고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사교육 시장이 커지는 만큼 지하경제 규모도 계속 커진다. 다만 아무도 이에 대해 조사를 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통계로 잡히지 않는 것 뿐이다.

가령 명문대학에 가면 이런 전단이 곳곳에 붙어 있다. '과외교사 구합니다.' 이렇게 구한 대학생 과외교사는 주택가 버스정류장에 이런 전단으로 소개된다. '명문대 과외교사 있습니다.' 이런 기업형 과외알선업체는 중학교 졸업앨범을 토대로 수험생이 있는 집집마다 과외교사를 소개해 준다는 전화를 돌린다. 그렇게 해서 교사를 중개하는 데 성공하면 과외교사로부터 과외비의 15~50% 되는 금액을 뗀다.

과외교사를 50명 거느린 업체에서 교사 당 월 수강생이 평균 두 명이고 수업료가 40만원이라면 업체의 월수입은 600만~2,000만원이 된다. 기본 과외비가 수백만원대에 이른다는 족집게 과외교사 역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학부모들이 통장으로 수업료를 이체하는 것이 보통이니 세원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다.

■ 국세청, 사교육 지하경제 밝혀야

사교육 지하경제를 줄이는 첫 걸음은 공교육을 살리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토대로 대학은 학생을 뽑아야 한다.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현재의 내신이나 수능시험으로는 키우지 못한다면 학교에서 먼저 주관식 교육과 시험을 시행하고 그를 바탕으로 입학시험이 달라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도 사교육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교육이 완전히 사라져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현재처럼 탈세를 공공연히 하면서 그것을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사교육은 사라져야 한다.

그것은 부정한 수단을 써도 성적만 올리면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잘못된 가치관을 범람시켜서 한국사회를 기초부터 흔들기 때문이다. 국세청은 사교육의 지하경제 규모를 파헤치고 세금을 제대로 받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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