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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육백 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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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육백 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입력
2008.01.2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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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나기 전, 여러 날 동안 옥편을 들춰보며 고민을 했던 적이 있었다. 고향에 계신 아버지껜 죄송하지만, 아이 이름만은 꼭 내 손으로 지어주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부르기도 쉽고, 쓰기도 편하게 외자 이름을 지어줄 작정이었다. ‘율’이나 ‘우’ 둘 중에 하나로 하자. 아내와 그렇게 합의를 하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를 넣었다. 한데, 아버지에게 뜻밖의 말을 들었다. 외자 이름은 안 된다, 우리가 전주 이씨잖니.

아버지의 설명인즉슨, 전주 이씨들은 대군(大君)이나, 군(君)처럼, 왕의 직계 혈족에게만 외자 이름이 허용된다는 것이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내가 퉁명스럽게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네 아들, 족보에 안 넣으려거든 마음대로 해라. 아버지는 완강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시 옥편을 찾아 남은 한 자를 찾아 넣을 수밖에. 그러면서 몇 년 전 만났던 한 여자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왕씨 성을 가진 여자였는데, 그녀는 내 본을 묻더니, 대뜸 이런 말부터 했다.

저하고는 죽었다 깨어나도 결혼하실 수 없는 분이네요. 내가 뜨악해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원수의 집안하고 어떻게 혼인을 해요. 왕씨들은 원래 전주 이씨하고 결혼 안 해요. 그건 육백 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는 조상들의 원한이거든요.

<저작권자>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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