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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사실+거대한 허구, 역사를 '위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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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사실+거대한 허구, 역사를 '위조'하다

입력
2008.01.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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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광훈 새 장편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소설가 우광훈(39)씨의 새 장편 <베르메르 vs. 베르메르> (민음사 발행)는 팩션의 틀을 갖추고 있다. 주인공은 네덜란드의 화상이자 화가였던 반 메헤렌(1889~1947).

2차대전 때 나치의 거두 헤르만 괴링에게 베르메르의 그림을 팔아 넘긴 혐의를 받은 그는 전후 법정에서 그 작품이 실은 자신이 그린 것임을 밝히며 위작을 직접 그려보인 일로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그가 1937~42년 베르메르의 미공개작을 발굴했다며 내놓은 6점 역시 자작품임이 드러났다.

우씨는 “2년 전 ‘지상 최고의 사기꾼’이란 내용의 TV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1등이 반 메헤렌이었다”며 “그의 삶이 너무 인상 깊어서 소설로 써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한다. 2009년 서울에서 베르메르전을 기획하던 미술사학자 ‘나’는 베르메르의 미공개작을 소장하고 있다는 편지를 받고 네덜란드를 찾는다.

발신인은 다름아닌 희대의 ‘베르메르 위조범’ 가브리엘 이벤스(반 메헤렌을 모델로 한 인물)의 딸. 진품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학자로서의 감식안과 부친의 예술혼에 대한 딸의 열정적 증언에 끌려 전시를 결정한다. 이어 ‘나’는 딸의 증언과 6권의 참고서를 바탕으로 가브리엘의 삶을 재구성한다. 이 부분이 소설의 몸통이자 ‘액자 속 그림’을 이룬다.

작가는 위대한 화가를 꿈꾸던 가브리엘의 위조 행각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복수극”(269쪽)으로 해석하면서 그의 생애를 복원한다.

정확한 재현이라는 고전주의 명제를 고집했던 가브리엘에게 입체파, 인상주의 등 모더니즘 화풍이 득세하는 1920, 30년대는 그야말로 저주였다. 유력 화상과 미술 평단의 관심을 끌 만큼 비범한 재능을 지녔지만 가브리엘은 결국 그가 “과장된 도상이나 괴상망측한 이미지의 향연”(78쪽)이라 여겼던 작품에 밀려 몰락의 길을 걷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몰락시켰던 시대가 다시 그를 구원한다. 이윤을 맹종하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미술시장을 장악하면서 그는 음험한 화상 사이먼과 손잡고 ‘얼굴 없는 베르메르’로 거듭나 못다 펼친 예술적 재능을 발산한다.

소설의 반전은 ‘액자틀’에서 일어난다. 가브리엘을 단순한 위조범이 아닌 ‘베르메르의 환생’으로 격상시킴으로써 진품 판정의 알리바이를 완결하려는 ‘나’는 뜻밖의 상황에서 낭패를 당한다.

위작이란 마땅히 원작이 있어야 존립할 수 있는 것일텐데, 그 원작이 진품이 아니라면 위작 작가는 위조범인가 창작자인가. 독자의 머리를 둔중하게 울리는 반전은 액자의 바깥에도 있다.

당신이 팩션(faction=fact+fiction)이라 믿었던 이 작품은 사실(fact)이라곤 한줌도 안되는, 허구(fiction)의 건축물이자 정교한 대체 역사다. 우씨는 “각각 로케이션과 세트장을 선호하는 감독이 있다면, 나는 단연 세트장을 선호하는 감독 축에 속하는 작가”라며 “무대가 한국이냐 외국이냐는 내게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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