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한판에 육체가 뒤바뀐다면…
무얼 물으면 대개 “모르겠어요”란 대답이 먼저 나온다.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같은 표현도 자주 사용한다. “뭐냐면” “그니까” 같은 간투사가 시시때때로 잠입하는 그의 언어는 그러나 아주 성실하다.
잘 모르겠는 이유를 자분자분 설명하는 자칭 “말주변 없는” 그의 화법은 어느 명쾌한 화자보다도 더 넓은 내면의 영토를 노출한다. 간절한 소통에의 욕구, 그것이 배우 신하균(34)의 알파요, 오메가인 모양이다.
윤인호 감독의 스릴러 영화 <더 게임> 에서 신하균은 치명적 내기 한판에 육체가 뒤바뀌는 젊은이와 노인의 1인2역을 연기했다. 죽음을 앞둔 대부업체 회장 강찬식(변희봉)이 젊음을 되찾기 위해 내건 30억원의 미끼에 걸려 육체를 강탈당하는 가난한 화가 민희도. 뇌 수술로 육체를 바꿔치기 당한 후 착하고 순한 청년에서 음흉하고 냉혹한 노인으로 눈빛을 바꾸는 신하균의 연기는 노추(老醜)가 그대로 묻어날 정도로 천연하고 섬뜩하다. 더>
“어찌 보면 많이 보여졌던 소재인데, 이건 현실에서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뇌 수술을 통해 젊은 몸을 갖는다, 언젠가 더 나쁜 마음 갖고 젊은 사람 납치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인간의 욕망, 욕심 같은 부분을 건드려주기도 하고, 1인2역이라는 점도 영화적으로 재밌게 표현되지 않을까 싶었고….” 할리우드 영화 <페이스 오프> 를 연상시키는 <더 게임> 은 막판 반전이 췌언처럼 느껴지지만, 독특한 설정과 전개가 시종 흥미진진하다. 스릴러의 이완을 유머가 채우고, 서사의 과속을 배우들의 열연으로 메우는 식으로 자기 지분을 최대한 챙긴 영화다. 더> 페이스>
짝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듯 물끄러미 훔쳐본 선배의 잔상이 ‘신하균 안의 변희봉’을 바깥으로 풀어놓는지, 신하균의 연기에선 언뜻언뜻 변희봉의 그림자가 스친다. “그 부분이 제일 고민이 많이 됐어요. 겉으로만 흉내내선 절대 안 될 것 같고, 일단은 민희도와 강찬식의 내면에 무엇이 닮아있는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욕심. 둘다 부질없는 짓을 했고, 그게 본연의 저의 모습과도 닮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단순히 선과 악의 구도로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람도 참 어리석고 안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사람의 모습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소심해서 내기 같은 건 못한다는 자연인 신하균의 일상은 그의 표현을 빌면 “되게 재미없다”. 일년의 절반 이상은 매일 혼자서 술을 마시고, 가끔씩 “막걸리 한 병 가방에 딱 꽂고” 도봉산으로 등산을 간다. 좋을 만치 산을 올라 청년실업 세대의 표상처럼 혼자 막걸리를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선 중얼중얼, 흥얼흥얼 산을 내려온다. 프라모델을 너무 좋아해서 “프라모델만 넣어주면 <올드보이> 의 오대수처럼 15년 정도는 바깥에 안 나올 자신이 있다”. 스노보드가 취미지만, “소심해서” 멋있게는 못 탄다. 연기 이외의 시간은 거의 백지인 셈이다. 올드보이>
그럼 배우로 사는 인생은 행복할까? “잘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몰라서 이렇게 사는 게 행복하단 생각은 못하겠어요. 제가 남의 말을 듣기만 하는 순둥이였거든요. 자기표현을 하도 안 하니까, 표현을 안 하고 많이 맞춰주는 편이니까 착하단 말을 많이 듣죠. 그리곤 집에 가서 벽을 확….(웃음) 이렇게 표현에 서툰 제가 영화에선 겉으로 표현 못하는 그 무언가를 관객과 교감할 때가 있어요. 그때 오는 희열은 말로 못하죠. 그걸 느꼈다는 보람, 배우로 살면 그거 하난 정말 좋아요.”
<더 게임> 이 개봉하면 신하균은 또 고민에 빠진다. 일과 일 사이, 백지 같은 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분간 뭘 해야 할까요? 아우, 할 게 없어요, 진짜. 참, 한숨이 다 나오네. 눈도 오는데….” 31일 개봉. 더>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