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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불산단과 태안반도

입력
2008.01.2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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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불산단 전봇대는 누가 뽑았나. 수년간 굳게 박혀 있던 그것들을 이명박 당선인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단 이틀 만에 뽑아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태안반도 원유유출 사고 후 달포가 넘도록 수백억원씩 모아둔 주민생계비는 누가 지급하지 않았나. 노무현 참여정부가, 그 아래 공무원들이 그랬다는 것 또한 정설이다. 굳이 정설이라 한 것은 대다수 국민이 은연중에 그렇게 여기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 전봇대 뽑은 건 잘 된 일이지만

대통령직 인수위라는 법률적 기구가 전봇대를 뽑아내고 주민생계비를 나눠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기구의 설립목적에 행정집행권이 적극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으나 정치적 현실감으로 보아 '할 수 있을 것도 같고, 해서는 안될 것도 같다'는 것이 상식이다.

전봇대 뽑은 것은 새 정부의 공(功)이고, 생계비 지연 지급은 현 정부의 과(過)로 여기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넘어갈 수 있겠다. 하지만 그 원인에 관심을 가져보면 '대불산단과 태안반도'의 결과에, 나아가 앞으로 최소 5년간 예상되는 유사한 결과에 근심이 없을 수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불산단 전봇대는 당선인이 2년 전 스치듯 들렀을 때 느꼈던 생각을 인수위 간담회에서 얘기하며 "그 전봇대는 지금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곧바로 땅파기가 시작됐다.

그 전격적 집행력이란 긴급조치나 대통령 특명을 무색케 하는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당선인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명했기 때문이었다. 기업이 외화를 벌기 위해 제품을 수출하려는데 전봇대 따위가 이를 방해하고, 공무원들이 그것을 모르는 척 했다는 것은 천하에 몹쓸 짓이라는 이야기다.

만약에, 태안반도 사태로 어민들이 목숨을 끊기 전에, 당선인이 인수위 간담회에서 "현지에 직접 가서 보았을 때 주민들 고통이 말이 아니더라. 우선 조금씩이라도 생계비를 보조해 주면 좋을 텐데, 돈이 들어와 있다는데 공무원들이 책상머리에 앉아 현장을 외면하고, 절차와 규정만 논하고 있을 게 뻔하다.

아마 지금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면 어찌 됐을까. 박혀 있는 전봇대를 뽑아내는 것도 아니고 갖고 있던 돈에 나눗셈만 하면 되니, 그날로 배분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심각한 사태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대불산단과 태안반도의 뒤처리가 신구(新舊)정권의 공과(功過)로 극명하게 나뉜 이유는 당선인의 '관심' 여부였다. 태안반도에 대해 당선인이 관심을 표명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당선인은 2년 전에 '전봇대 시찰'도 아닌 단순 방문에서 받은 느낌을 기억했다가 탁상행정의 표본으로 질타했다.

그렇게 보면, 태안반도 상황은 온 국민이 자원봉사에 나설 때 후보였던 당선인도 직접 기름을 닦으며 주민의 고충을 청취했기에 기억이나 참여 면에서 결코 대불산단보다 덜 할 수 없다.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질타한다면 태안반도 쪽이 결코 덜 받을 이유가 없다. 결국 당선인의 '관심' 차이로밖에 볼 수 없다.

■ 이당선인이 태안도 언급했다면?

기업과 수출, 어업과 민생에 대한 당선인의 관심이 대불산단과 태안반도에서 명확하게 드러났고, 앞으로도 이런 추세는 변하지 않을 듯 하다. 당선 직후 이어졌던 전경련 대기업 등과의 만남에서 당선인은 누구보다 활기차고 자신만만하게 좌중을 이끌었다. 해 줄 이야기도 많았다.

최근에야 이뤄지고 있는 농어민과 자영업자들과의 대화에서 당선인은 해 줄 말보다 들어야 할 말이 더 많았다. 덜 즐겁고 덜 신이 난 모습이었다.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었음을 고백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의 관심은 그의 정부가 지향해야 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국민은 이번에 '태안반도'보다 '대불산단'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리더십을 택했고, 결국 '태안반도'는 과거 정부의 몫으로, '대불산단'은 미래 정부의 몫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당선인이 평소에 관심을 덜 가졌던 쪽에도 관심을 갖고, 목소리도 더 높이 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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