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시장에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 원칙이 있다. 바로 정보통신부의 유효경쟁 정책이다. 유효경쟁이란 선발사업자이자 시장점유율 50% 이상인 SK텔레콤에 비해 뒤늦게 출발한 KTF와 LG텔레콤이 시장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후발주자를 보호하는 정책이다. 경쟁업체들이 존속해야 특정 업체의 시장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가장 대표적인 유효경쟁 정책이 바로 요금인가제다. SK텔레콤이 요금을 올리거나 내릴 경우 반드시 정통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이를 통해 SK텔레콤이 요금을 내려 KTF와 LG텔레콤에 타격을 주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게 요금인가제의 취지다.
결과적으로 요금인가제는 SK텔레콤의 이용료 인하를 막아 KTF와 LG텔레콤이 오래도록 적정 이윤을 올리며 사업을 할 수 있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이용자는 독점의 악영향에서는 벗어났지만, 싼 값에 이동통신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봉쇄당했다.
문제는 유효경쟁 체제에 길들여진 통신업체들이다. KTF와 LG텔레콤은 SK텔레콤에 앞서 자발적인 요금 조정을 하려 들지 않는다. 언제나 요금인가제의 그늘에 숨어 SK텔레콤의 요금이 조정되면 뒤늦게 움직였다. 발신자번호확인(CID) 요금 인하가 그랬고, 문자메시지(SMS) 요금 인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보니 정통부도 언제나 SK텔레콤을 겨냥해 정책을 쏟아낸다. SK텔레콤이 움직이면 KTF와 LG텔레콤도 알아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통해 요금인가제 폐지가 거론되고 있다. 정통부의 유효경쟁정책 폐기인 셈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동통신업계에는 아직도 유효경쟁체제의 망령이 떠돌고 있다.
인수위와 정통부에서 통신비 인하 방안에 대한 업계의 의견을 요청했으나 후발업체들은 여전히 SK텔레콤의 동향만 살피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유효경쟁 체제가 사라져도 길들여진 이동통신업계가 얼마나 이용자 편의를 위해 자율적으로 변할 지 미지수다. 이를 고민하는 통신업계의 성숙한 모습이 아쉽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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