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사상 최악의 연안오염을 일으킨 태안 앞바다 원유유출 사고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됐다. 사고 개요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드러났다는 점에서, 몇 가지 기술적 확인과 증거 확보만으로 충분했을 수사가 사고 발생 45일 만에 내놓은 결과치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사실의 입증보다 사건 외적인 판단에 흔들렸고, 시간을 끌어 결과적으로 피해 주민에 대한 보험사와 국제기금의 손해배상만 늦어졌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검찰은 대량의 해상 원유유출을 부른 삼성중공업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충돌은 쌍방의 과실로 빚어졌다고 밝혔다. 예인선에 끌려가던 크레인선이 기상악화에 따른 강풍 등으로 예정항로에서 크게 벗어나 유조선과 충돌할 우려가 있었는데도 회항이나 임시정박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과실이 있었다.
한편으로 유조선은 충돌 가능성에 대비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충돌회피에 필요한 충분한 조치도 제때 취하지 못한 과실이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러면서 과실의 경중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쌍방 과실로 인한 통상적 해상충돌에서 양측 과실의 경중을 가리기란 쉽지 않지만 이번 사고처럼 움직이는 선박과 정박한 선박의 충돌은 다르다는 것이 국민의 법 상식에 가깝다.
서로 맞은 편으로 뛰다가 부딪치는 것과 가만히 서 있는데 부딪칠 듯 달려와서 피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부딪치고 만 경우의 법적 평가가 같기 어렵다. 혹시라도 과실 경중에 따른 손해배상 분담 비율을 염두에 두었다면,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을 다루는 자세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과실 책임을 면하지 못함으로써 유조선 보험사와 유류오염국제기금이 최대 3,000억원의 손해배상을 하고, 삼성중공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수순에 틀이 잡힌 게 그나마 다행이다.
수사나 보험금 등과 관련한 복잡한 고려 때문에 변변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던 삼성중공업이 오늘 대국민 사과를 한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피해 주민의 절실한 관심사인 손해배상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오죽하면 이 정도가 다행스러울 지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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