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 냄새 좀 피우겠습니다.”
최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 (히라타 오리자 작, 성기웅 연출)의 한 장면. 연구실을 찾은 세일즈맨 오코노기씨는 “근처에 먹을 데가 없다”면서 도시락을 꺼낸다. 그런데 냄새를 피우겠다는 대사가 허튼소리가 아니다. 오코노기씨는 빈 도시락이 아닌 실제 유부초밥을 꺼내 먹으면서 대사를 이어간다. 과학하는>
연극은 인생을 반영하기에 배우는 무대에서 잠이 들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요즘 연극에선 삶과 꼭 닮은 한 가지를 유독 자주 볼 수 있다. 배우의 먹는 모습이다. 차, 커피, 과자 같은 간식거리 차원이 아니다.
자장면, 메밀 국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연극에서 먹는 장면은 마임으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음식물을 소품으로 직접 무대에 등장시켜 관객의 시각, 청각 뿐 아니라 후각까지 자극하는 작품이 늘었다.
<과학하는 마음3-발칸동물원> 에 등장하는 실제 소품은 유부초밥만이 아니다. 과자, 아이스크림, 녹차 등 먹을거리가 끊임없이 나온다. 올해 초 국립극장의 배우열전 시리즈 중 하나로 선보인 연극 <겨울 해바라기> (정의신 작, 이상직 연출)의 출연 배우들은 이것저것 다양하게 음식을 먹는다. 겨울> 과학하는>
주인공 히토시와 한 집에 사는 트랜스젠더 친구 쓰유코는 귤을 까먹으며 히토시의 잘못된 애정관계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고 히토시의 어머니는 자주 맥주를 마신다.
시간적 배경이 섣달 그믐인 이 연극은 온 가족이 메밀국수를 먹는 장면으로 끝난다. 메밀국수를 먹으며 새해를 맞는 일본의 전통을 묘사한 것이다. 지난해 공연된 연극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 (지경화 작, 박근형 연출)에는 수박이, 연극 <짬뽕> (윤정환 작, 연출)에는 짬뽕과 자장면이 실제 나온다. 짬뽕> 내>
연극에 음식물 등장이 잦아진 것은 일본 원작 연극 등 일상성을 강조한 공연이 인기를 얻고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연출가들은 관객과 좀 더 가까운 연극을 만들기 위해 음식물을 소품으로 쓴다고 설명한다.
전작인 <구보씨와 경성 사람들> 에서는 자장면을, <과학하는 마음1-진화하는 오후> 에서는 컵라면을 소품으로 썼던 <과학하는 마음3-발칸 동물원> 의 연출가 성기웅씨는 “최근 현실을 그대로 무대에 옮기는 작업을 주로 하다 보니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면서 “마임으로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소위 ‘연극적 표현’이 오히려 관객의 몰입에 방해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과학하는> 과학하는> 구보씨와>
<겨울 해바라기> 를 연출한 이상직씨는 “먹는 모습에서 독특한 재미가 나온다는 작가의 의도를 살렸다”면서 “실제 소품을 사용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생활 소품이 많을수록 배우들도 연기하기가 쉽고 관객의 공감도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겨울>
전문가들은 일상성을 강조한 연극의 흐름을 TV 등 영상매체와 가까워진 관객이 연극에 대해서도 친근성을 기대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연극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는 일상성은 연극계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연극평론가 장성희씨는 ““연극의 일상성만 추구하다 보면 상상력의 장소였던 공연장이 비루한 현실을 확인하는 장소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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