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서울 종로구 원서동의 소극장 ‘공간사랑’에 김덕수 김용배 이광수 최종실, 네 명의 젊은 광대들이 모였다. 남사당패 등 전문연희패 집안에서 태어나 4, 5세부터 전국팔도를 누볐던 이들이었다.
네 광대들은 풍물 악기 중 꽹과리와 북, 장구, 징 네 개를 추려 마당이 아닌 무대에 올렸고, 좁은 소극장에 모인 관객들을 새로운 신명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한국의 대표 음악으로 자리잡은 사물놀이의 탄생이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2008년 1월 21일. 사물놀이가 태어난 곳에서 김덕수(56) 이광수(56) 최종실(55)이 다시 모였다. 이제는 건축 사무소의 세미나실로 사용되고 있는 과거의 ‘공간사랑’에서 신명나는 삼도농악가락이 터져 나왔다. 장구와 북에서 시작된 소리는 징과 꽹과리가 더해지면서 울림이 커졌고, 굳어있던 표정도 흥겨운 리듬 속에 어느새 환하게 풀어졌다. “이 자리에서 소리를 내보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평생 사물만이 우리의 정신이고 운명이라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최종실) “여기도 참 많이 변했네요. 숨쉬기도 어려웠던 70년대, 이 작은 공간에서 새로운 문화운동이 시작됐지요.”(김덕수) “전통 예술이 문화재 지정으로 박제화 되면서 아무 데서나 놀이를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소극장에서 암암리에 활동을 시작한 거죠.”(이광수)
사물놀이 탄생 30주년을 맞아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이 3월 6일과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념 공연을 펼친다. 1986년 세상을 떠난 김용배의 자리는 후배 남기문(50ㆍ국립국악원 지도위원)이 대신 메운다. 길잡이와 비나리, 삼도설장구가락, 삼도농악가락, 판굿 등으로 꾸며지는 무대다. 세 명의 원년 멤버가 한 무대에 오르는 것은 14년 만의 일. 그야말로 드림팀의 컴백이다. 서울 공연 이후 내년까지 미주와 유럽 투어를 하고, 지방 순회도 예정돼있다.
세계 무대의 박수갈채를 함께 받았던 이들은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상쇠 김용배가 1984년 국립국악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시작으로 최종실, 이광수도 차례로 독립했다. 혼자 남은 김덕수는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했다. 최종실은 중앙대 국악과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며 이광수는 충남 예산에 민족음악원을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종실은 “이번 공연은 김덕수패의 공연이 아니라 사물놀이 원년 멤버들의 공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다시 모인 이들은 사물놀이의 미래에 대해 한 목소리를 냈다. 30주년 기념 공연은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사물놀이의 미래를 바라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광수는 “그동안 뿌린 씨앗이 1세대 한류를 만들었다. 이제는 그 씨앗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덕수는 “천하의 사물놀이가 전용 공간 하나 없다”면서 “전용 극장과 연습 공간, 기념관 등을 갖춘 사물놀이 센터를 만들기 위해 기념 사업회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최종실도 “사물놀이 센터가 꿈이 아니다. 공연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미래를 설계할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오랫동안 사물놀이와 함께 해오면서 힘든 일도 많았을텐데 그만두고 싶을 때는 없었냐는 질문에 최종실은 이렇게 답했다. “사물놀이가 당신에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운명이라고 대답해왔습니다. 두드리는 소리를 통해 커왔고, 두드림을 통해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 다시 태어나도 두드리며 살 겁니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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