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2일 제시한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은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 이후 굳어진 현행 입시 제도의 근간을 송두리째 바꾼다는 점에서 가히 혁명적이다.
인수위는 앞으로 최소 5년간 3단계(수능과 내신 반영 대학별 자율화→ 수능 과목 축소→ 대학별 신입생 선발 완전 자율화)에 걸쳐 순차적으로 대입 전형을 개선,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교육현장에는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 2009학년도에 등급제 보완
일단 올해 11월13일 치러지는 수능은 외견상 큰 변화가 없다. 수능 출제 및 채점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등급과 함께 표준점수, 백분위를 대학측에 제공한다. 등급제를 보완하는 것이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 처음 도입된 등급제가 수험생들이 지원전략을 세우는 데 엄청난 혼란을 유발하고, 사교육 시장을 확대시키는 등 부작용을 양산했다는 판단에 따라 점수를 병기하는 쪽으로 개선했다.
학교생활기록부 및 수능 반영비율을 대학에 전적으로 맡기게 된 점은 지난해 대입전형과 비교할 때 크게 차이가 난다. 인수위는 "내신 및 수능 반영비율을 둘러싼 대학과 교육부간의 갈등이 학생과 학부모의 혼란을 초래했다"는 말로 반영비율 자율화의 배경을 설명했다.
인수위는 입학사정관제 확대를 통해 대학들이 선진화된 방식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전형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자율화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입학사정관제는 학생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잠재력 등을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제도로, 이를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올해 12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그러나 인수위는 "대학이 학교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합리적으로 학생부를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학생부 반영비율의 대학별 자율화가 고교 교육 정상화의 근간을 해치면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인수위는 대입 자율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최소한의 규제장치도 마련했다. 일부 대학이 본고사를 실시할 가능성에 대비, 올 상반기에 자율규제를 통한 본고사 금지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인수위는 "대교협이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등과 함께 각 대학의 논술고사 등을 심의토록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대교협법 등의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009학년도 입시부터 신입생 모집에서 합격자 발표까지 전형과정의 세세한 사항들이 대학정보 공시항목에 반영돼 공개된다. 대학들에 자율이라는 당근을 쥐어준 만큼 최소한의 채찍도 가하겠다는 뜻이다.
▲ 2012학년도부터 수능 과목 축소
인수위는 올 상반기 안에 교육부의 대입업무를 대교협에 이양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2011학년도까지 대입 전형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교협은 2010학년도부터 대입 전형의 기본 방향과 전형일정 등 전형에 관한 기본 계획을 수립하게되지만 대학별 입시 체제에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전망이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이 대입을 치르게 되는 2012학년도에는 수능 과목이 5개로 대폭 줄어들게 돼 대입 전형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게 된다.
인수위는 2012학년도 입시부터 탐구영역(사회, 과학, 직업)과 제2외국어 및 한문 영역 선택과목이 2개를 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언어와 외국어(영어), 수리영역을 합하면 최대 5개로 수능 과목이 축소되는 것이다. 현재 수능은 탐구영역서 4과목까지 선택이 가능하며 제2외국어 및 한문에다 언어, 외국어, 수리를 합치면 8개 과목까지 응시할 수 있다. "최대 3개 과목이 줄어드는 만큼 수험생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게 인수위의 설명이다.
인수위는 중학교 2학년이 시험을 보는 2013학년도부터는 영어를 상시 평가가 가능한 문제 은행식 능력평가시험으로 대체해 수능 과목을 4개까지 축소할 방침이다. 능력평가시험은 교육부가 2009년 하반기 첫 실시를 목표로 개발중인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최소 분기당 1회씩 연 4회 이상 시행될 시험이어서 수험생들은 복수 응시가 가능하며 성적은 등급으로 표기될 예정이다. 인수위는 "수험생들은 언제든지 평가시험에 응시할 수 있어 영어 실력을 늘리면서도 입시부담을 더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2012년 이후 대입 완전자율화
수능 과목 축소이후엔 대입 완전자율화 수순을 밟게 된다. 그러나 인수위는 "여건이 성숙되는 시점에 민의를 수렴해 학생선발 자율을 법으로 명문화 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완전자율화 시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인수위는 완전자율화 단계에서 현재 교육부 장관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위탁해 시행하고 있는 수능을 평가원에 완전 이양하겠다는 계획이다. 수능 출제를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도록 함으로써 교육부가 대입에서 100% 손을 떼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완전자율화 단계에서는 대학들이 수능에 구애 받지 않고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어 대학별 고사 등 다양한 전형을 실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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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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