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가 지난 10일 취임 후 내건 슬로건은 ‘제3의 길’이다. 그 동안 범 여권을 지배해왔던 이념 중심의 ‘낡은 진보’를 실용주의적 ‘민생 진보’로 탈바꿈시켜 한나라당 보수 진영과 대등하게 경쟁하겠다는 게 요체다. 이런 실험이 당을 살리고, 손 대표를 야당 지도자로 세울 답이 될 수 있을까. 20일 서울 당산동 당사 대표실에서 그를 만나 ‘제3의 길’을 물었다.
_손 대표가 주창하는 '제3의 길'은 정확히 무엇인가.
“국민과 함께 하는 새로운 진보다. 사람을 중시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가치추구다. 새로운 진보는 두 가지 전선(戰線)이 있다. 하나는 보수와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낡은 진보와의 대립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시장이 최고이고, 모든 것을 결정하고 경쟁에서의 효율성 등이 목표인 것처럼 하고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한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_하지만 국민은 이 당선인의 그런 철학을 알면서도 그를 압도적으로 당선시켰다. 총선까지 한나라당과 차별화해 국민의 시선을 끌 복안이 있나.
“고민은 국민이 지금까지의 범 여권, 즉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의 길을 버렸고 엄중한 채찍을 가했다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이 당선인이 하고자 하는 일에 국민의 뜻이 담겨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만큼 최대한 협조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시장이나 경제나 능률이 다가 아니다. 진보는 역사의 필연이었다. 진보 없는 정치는 죽은 정치다. 한반도 대운하는 능률만 강조하고, 경기부양책 등 건설경기 통해 기대되는 경제효과만 생각한 것이다. 경제정책은 금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 되지만, 자연은 한번 파헤치면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_다소 추상적이다. 그 정도로 석 달도 안 남은 총선까지 국민의 시선을 잡을 수 있겠나. ‘이거다’ 하는 메시지나 슬로건은 없나.
“그런 것은 앞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슬로건보다 구체적인 정책에 따라 나타나야 한다.”
_정책이라면,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이 당면 현안이다.
“개편안은 국가를 너무 시장주의 관점에서 보고 능률과 기능만 강조했다. 정부조직에는 그때그때 국가의 정신,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야 하는데 지난 정부 또는 열린우리당이 반(反) 시장적이었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무조건 시장과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는 권력분산의 길을 가고 있는데 대통령 기능이 강화되는 것은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인권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한 것인데 세계흐름을 잘못 본 것이다. 권력에 의한 인권탄압 등을 감시해야 할 인권위가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게 말이 되는가. 방송통신위도 중립성과 독립성이 절대적인데 대통령 직속으로 한다는 것은 그것을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 경우 남북평화 화해협력 시대로 가는데, 교역은 산자부, 통신은 정통부 식으로 찢어놓은 것은 순전히 기능만 생각한 것이다. 오히려 이럴수록 통합과 조정의 역할이 커진다. 통일을 향한 국민의지와 정신의 상징성이 있는 것이다. 중국을 봐라. 2050년 프로젝트를 만들고 그것에 따라 움직이는데 우리도 최소한 30년 대계는 해야 하지 않나. 현실적 기능과 효율성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_ 낡은 진보와의 전선에 대해 묻겠다. 손 대표가 앞서 언급한 진보의 가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우리당 때도 나왔고, 대선 당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도 '사람 중심 경제'를 얘기했다.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영국 노동당이 좌파에서 제3의 길을 택하면서 국민지지를 받은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1980년대 영국에 있으면서 노동당의 변화과정을 봤다. 좌파이념을 고집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대처정부에 정권을 빼앗긴 뒤 노동당은 양분됐다. 더 사회주의답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강경파와 경제건설 능력이나 민생의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해서 졌다는 온건파의 논쟁이 있었다. 결국 경쟁과 시장을 인정하면서 노선을 옮겨갔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서민과 노동자에게 뭘 갖다 줬느냐, 과연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줄여주고 봉급 올려줬느냐는 국민의 원성이 확인됐다. 앞으론 능력 있는 진보가 돼야 한다.”
_그러나 범 여권이 분열돼 있어 총선을 통해 그런 가치를 관철하기 어려워 보인다.
“분열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다원화 사회에선 얼마든지 의견이나 노선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차이를 강조하고 확대해서 각기 다른 길을 간다고 하면 제대로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겠느냐. 이해찬 전 총리, 유시민 의원이 탈당했지만, 이해찬 전 총리나 유 의원이 이념을 앞세워 총리직과 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한 게 아니다. 유 의원이 전통적 좌파이념을 고수했다면 어떻게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연금개혁을 했겠는가. 연금재정 실정을 보고 현실주의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전 총리도 진보 입장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길을 터주고 도와주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전에는 양도소득세 인하에 대해 보수는 찬성하고, 진보는 반대했다. 하지만 인하하면 서민들에게도 결과적으로 혜택이 돌아간다. 양도세 인하가 일부 부자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탁상공론이다. ”
_총선에서 몇 석을 목표로 하나.
“지금 숫자로 목표 세울 상황이 아니다. 어떻게 변화하고 바뀐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 국민이 ‘에이 안되겠다, 망해서 없어져라’아니면 ‘하는 것 보니 싹수가 있네, 최소한 호헌선(100석)은 줘야지’ 할 것이다. 그것은 국민이 결정할 일이지 우리가 몇 석을 얻겠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호헌선 지키겠다고 하면 국민이 ‘웃기는 놈들’이라고 한다. 국민은 건전하고 균형 있는 정당정치를 바라는 마음이 있지만, 아직은 열어주지 안고 있다. 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_국민이 감동하려면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 같은 책임지는 자세나 물갈이 공천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당내 각 세력이 안배된) 최고위원 인선에 대한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쇄신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조금도 변명하거나 회피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쇄신과 안정을 대립 개념으로 보면 안 된다. 쇄신과 변화 없이는 죽는다. 대표 수락연설에서도 그걸 분명히 했다. 그러나 쇄신을 흔히 물갈이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아니다. (물갈이를 하면서) 내몰고 짓밟고 싸움판이 벌어지고 난장판이 벌어질 때 국민은 어떻게 보겠느냐. 재떨이가 날아가고 각목이 난무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 지금은 쇄신을 위한 환경을 만들 때다. 단합 속에서 결단과 희생으로 변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나를 포함한 당 지도부가 어떤 자기희생을 보여주느냐가 관건이다.”
_손 대표도 한나라당에 있을 때 당 쇄신을 요구하면서 세력교체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나. 과감한 인적 쇄신 없이 쇄신이 되나.
“(인적쇄신도) 다 필요하다. 그런데 인적쇄신이 내쫓기로 해석돼선 쇄신의 환경이 만들어질 수 없다. 어떻게든지 쇄신은 해야 한다. 당에서 손학규를 대표로 뽑았을 때는 한 손에 칼 들고 이리치고 내리치고 돈키호테처럼 이것저것 쑤시고 찌르는 것 기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손학규가 추구해왔던 통합의 정치를 보고 그 속에서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손학규가 가진 개혁성과 통합성, 두 가지 측면을 같이 추구하며 실현해달라는 의미로 맡겼다고 본다. 그래서 어렵다. (대표직이) 독배란 것 알고 받았다. 죽기위해서 먹어야지 하면서.”
_텃밭인 호남공천부터 새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데 벌써부터 말들이 많다.
“특정인사나 특정지역, 특정그룹을 마녀사냥을 하는 것같이 쇄신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게 획일주의다. 어떤 세력과 어떤 인사들을 반드시 쳐내야 한다는 발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믿는다. 반드시 쇄신이 이뤄진다고 본다. 쇄신을 선도하는 자기희생과 결단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무리 어려워도 민주세력을 살려온 정치적인 힘은 면면히 이어져왔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고 절망적이라도 그런 희망 없이 독배를 들지 못한다.”
_최근 중구로 이사 갔는데 어느 곳에서 출마할 생각인가.
“자기희생의 결단 없이는 변화를 보여줄 수 없고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에게 영원히 버림받는다. 총선에서 손학규가 역할을 하든 안 하든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역할이 정해질 것이다. ‘또 꼼수야’ 이렇게 되면 안 된다.”
_공천과 총선이 잘못되면 본인의 정치생명에 치명적일 수 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예수도 당장은 죽음의 공포 때문에‘주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다. 그런 절절함 마음이 있었지만 받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살려고 하면 나도 죽고 당도 죽고 민주정치도 죽는다.”
_한나라당 출신들이 모두 주요 정당을 이끌게 됐다.
“이회창 전 총재를 나와 평면적으로 재서 ‘다 한나라당 출신’이라고 재단하는 것은 잘못됐다. 신당에서 손학규를 앞세운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절실한 내부적 요구에 의해서 된 것이다. 일각의 경선요구도 있었지만, 오죽 절실했으면 나에게 최고위원 구성까지 전부 맡겼겠는가.”
_한나라당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기왕에 그렇게(이명박-박근혜측 긴장과 대립) 됐으면, 보수진영 내부에서 치열한 논쟁이 이뤄져 정체성 확립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제일 우려되는 것은 총선 이후 지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다.”
대담= 유성식 정치부장 정리=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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