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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에도의 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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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에도의 몸을 열다'

입력
2008.01.21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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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먼 스크리치 지음ㆍ박경희 옮김 / 그린비 발행ㆍ408쪽ㆍ2만원

칼로 배를 가르고,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장기를 끄집어내는 수술실 풍경.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을 리 만무하지만 18세기 에도 시대 일본인들에게는 더없이 충격적이었다.

그들이 할복에 익숙한 사람들일지라도….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의학의 주축을 차지했던 한의학은 인체 내부를 직접 들여다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굳이 피를 흘리며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기의 흐름에 따라 몸을 전체로서 이해하고 치료했기 때문이다. 칼과 가위 따위로 병을 고친다는 네덜란드 의사는 일본인들에게 로키 호러 픽쳐쇼의 흥분을 자아내는 이국적 매혹의 상징으로나 치부되는 형편이었으니 본격적인 의학으로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책은 폐쇄적이었던 일본이 난학(蘭學)과 해부학을 통해 그 문을 열어가는 과정을 신미술사학의 방법론으로 그린다. 신미술사학은 예술작품 속에 숨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작품을 미화하는 사회 체계를 검토하면서, 예술이 그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르임을 강조하는 연구 사조. 이 책 역시 단순히 해부학과 해부학 그림의 역사를 좇는 것이 아니라, 해부학 너머의 역사를 다룸으로써 좀 더 폭넓게 일본의 근대화에 접근한다.

먼저 에도의 몸을 연 것은 해부학에 매력을 느낀 의사들. 이들은 실제 치료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몸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본다는 자체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욕구는 인간의 몸을 열어보는 일이, 신을 향한 진리에 다가가는 것이라 믿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 계몽주의의 ‘보여주려는 강박’과 다름없었다.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이들 집단은 독일의 의사 요한 쿨무스의 해부학서 <타펠 아나토미아> 를 비롯한 여러 서양 책을 참조해 1774년 <해체신서> 를 펴냈고, 한발 더 나아가 합법적으로 사형수의 시신을 해부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화가를 고용해 해부 과정을 상세한 그림으로 남겼고, 유럽의 동판화 제작 기술에 힘입어 해부학은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에도의 몸은 서양문물과 해부학을 통해 활짝 열리고 있었다.

난학과 해부학은 몸을 들여다보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지은이는 그것이 에도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한다. 대상을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는 열망은 국토 구석구석을 눈으로 보는 여행으로 이어졌다.

신체에 피가 잘 돌아야 몸이 건강하다는 의학적 관점은 도로가 잘 연결돼야 나라가 건강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이런 변화는 결국 통일국가에 대한 기대로 자라났고, 일본이 근대국가가 되는 데 사상적 기틀로 작용했다는 것이 지은이의 결론이다. 미술사학자인 지은이 타이먼 스크리치는 영국 런던대 아시아ㆍ아프리카연구원 교수이자 일본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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