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를 인하하겠다고 해도 주가가 폭락하고, 경기부양책을 쓰겠다고 해도 주가가 폭락한다. 'R(recessionㆍ경기침체)의 공포'가 미국 금융시장을 꽁꽁 묶어 버렸다.
18일(현지시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1,450억 달러(약 15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세금환급을 실시해 경기를 적극적으로 부양하겠다고 밝혔지만, 그의 발언이 나온 직후 미 다우지수는 오히려 하락했다. 금융불안과 경기침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주택시장 대책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돌려주는 세금규모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규모지만, 근본적인 대책 없이 세금환급 만으로는 경기를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란게 시장의 판단이다.
앞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대폭적인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을 때도 주가가 폭락세를 보였다. 때가 늦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기침체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경기부양책 발표 후 미 경제의 향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문가들의 전망조차 극과 극으로 나뉘어, 오히려 혼란스러울 정도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데이비드 타이스는 미국 경제가 침체로 빠져들면서 연말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지금의 반토막 수준인 6,000포인트까지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골드만삭스의 애비 조지프 코언은 후반기에 경제가 활기를 되찾으면서 연말 다우지수가 14,750포인트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비관론의 뿌리는 금융시장의 총체적인 부실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피해가 확산기로에 있고, 여기에 더해 최근 '모노라인'(채권보증회사)의 부실까지 새로 불거지고 있다. 채권보증회사는 말 그대로 채권을 발행한 기업이 부도가 나도, 채권 원금이나 이자 등이 문제없이 지급되도록 보증을 서주는 업체다.
그런데 17일(현지시간) 국제신용평가업체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세계 1,2위 모노라인 기관인 MBIA와 암박파이낸셜그룹에 대해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해 충격을 던져줬다. 해당 업체 주가는 지난 1년 새 90%가량 추락한 상황이다.
채권보증회사의 부실은 신뢰와 안정성이라는 금융시장의 근본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어 미국에 새로운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채권보증회사의 보증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이들 기관의 보증으로 회사채 등을 발행해 자금을 유치하던 기업들은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현재 1,000억 달러 정도인 서브프라임 관련 예상 손실이 향후 7,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전망은, 서브프라임 부실이 아직 최고조에 이르지 않았다는 암울한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 지난해 장세를 떠받쳤던 기업수익이 지난해 말부터 급격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회의론에 힘을 실어주는 부분이다.
반면 낙관론은 경기부양과 금리인하가 하반기부터는 효력을 발휘해 미국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해석에서 기인한다. 당장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지만, 좀더 기다려보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은 2001년에도 닷컴거품 붕괴 이후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세금환급을 실시했는데, 결과적으로 미국인들의 소비 증대로 이어져 상당한 효과를 봤었다.
이번에는 1인당 300달러 또는 800달러, 그리고 가구당 최대 1,600달러까지 환급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부자들에게 돌아가는 세금환급액을 저소득층에게 돌리고, 추가적인 저소득층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민주당의 방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내수진작 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극단을 오가는 전망 속에 세계 금융시장의 이목은 29~30일 예정된 FRB의 금리인하로 모아지고 있다. 최대 0.75%포인트라는 기록적인 금리인하조치가 예상되는데,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보면 중단기 미국 경제의 향배를 추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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