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거덕거리던 한일 관계가 실용주의 외교를 표방하는 이명박 차기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보수정당의 정권교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관계 재구축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명박 당선인과 일본 정부는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를 각각 특사로 파견하는 등 새 정부 출범 전부터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당선인의 친형과 일본 정계의 최고 실력자를 특사로 교환한 것이 양국의 신뢰회복에 도움이 됐다는 지적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이 특사에게 “한일관계의 신시대를 열자”고 말하는 등 관계개선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특히 이 당선인이 17일 자신의 임기 중 일본 정부에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공언하자 일본 언론은 한국 차기정부가 “관계개선에 의욕을 보였다”고 평가하는 등 고무적인 반응을 보엿다.
당초 “한일관계가 지금보다는 좋아질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감을 보였던 일본 정부도 ▦북한에 비핵화를 엄격하게 요구하고 ▦한ㆍ미ㆍ일 3각 공조체제를 복원하며 ▦과거사문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차기 정부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며 환영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정상간의 ‘셔틀외교’가 부활하는 등 한일관계는 가시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경제 협력을 제일로 하겠다”는 이명박 차기 정부와 북 핵과 납치문제에서의 굳건한 공조를 바라는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입장차가 장벽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참의원 선거 참패이후 곤경에 처한 후쿠다 총리가 외교 분야의 업적을 실지 회복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측면도 있어 양국의 협력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실망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과거사 문제는 언제나 잠복해 있는 시한폭탄이다. 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이 당선인의 말을 “과거사 문제는 이제 해결됐다”는 식으로 받아들여 앞으로도 망언과 폭언을 계속한다면 이명박 차기 정부도 역사를 둘러싼 한일간의 불화를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철훈 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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