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영향력이 불가리아의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 계획 승인으로 더욱 강력해지게 됐다.
불가리아 내각은 18일 러시아로부터 자국을 거쳐 남유럽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건설 사업을 승인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의 사장이자 차기 대통령 후보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와 함께 불가리아를 방문 중이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게오르그 파르바노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이날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양국간 합의서에 서명했다.
러시아 가즈프롬이 이탈리아 ENI사와 추진 중인 100억유로 규모의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는 러시아에서 터키 등을 거치지 않고 흑해를 통과해 직접 에게해나 지중해 등 남유럽으로 수송하는 가스관을 건설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유럽에 가스를 공급하는 가스관이 통과하는 국가인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이 러시아에 ‘통행세’ 등을 요구하며 가스 공급을 중단시켰던 전례를 들며 사우스 스트림 가스관이 건설되면 그러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스 스트림 프로젝트는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나부코 프로젝트’에 대한 사실상의 맞불 작전으로 서방은 보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란이나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 카스피해 연안국의 가스를 들여오는 나부코 가스관을 2012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추진 중이다. 나부코 가스관 역시 불가리아를 지나게 되어 있어, 불가리아는 EU와 미국으로부터도 제안을 받은 상태다.
불가리아는 이번 사우스 스트림 계획 승인이 나부코 계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BBC 방송은 이번 계약이 나부코 가스관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했다. 알파뱅크의 콘스탄틴 바투닌은 “나부코 사업이 단기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면서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이 최근 러시아와 대규모 가스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나부코 가스관이 건설되더라도 유럽에 공급할 가스량이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번 가스관 계약과 관련, 불가리아 내에서 유례 없는 반러 시위가 벌어지는 등 반발도 만만치 않다. 불가리아의 친서방 야당인 DSB는 이번에 체결되는 에너지 협약들이 불가리아를 EU 안에 있는 푸틴 정권의 ‘트로이 목마’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며, 푸틴 대통령 방문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 18일 인권단체가 벌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푸틴은 떠나라” “러시아의 식민지가 될 수 없다” 는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는 불가리아에서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방문에 반대하는 사상 첫 시위로, 러시아 측에서는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불가리아는 옛 공산권에 속했던 동유럽의 구 소련 위성국가들 중 특히 친 러시아적이었기 때문이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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