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길버트·조지 듀오 "우리는 살아있는 조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길버트·조지 듀오 "우리는 살아있는 조각"

입력
2008.01.21 05:15
0 0

길버트와 조지는 스스로 “살아있는 조각”임을 주장하는 장난 같은 퍼포먼스와 액자를 여러 개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크게 확대한 ‘도발적이면서도 바보 같은’ 반종교적 사진 이미지로 유명하다. 물론 점잖은 영국 신사의 외양을 한 채 불경스런 말을 덤덤하게 늘어놓는 동성애자 듀오라는 사실 자체가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한다.

키가 크고 다변인 조지 패스모어(66)는 영국 ‘토종’이지만, 키가 작고 눌변인 길버트 프로슈(65)는 사실 이탈리아 사람이다. 둘 다 노동자 계급 출신인데, 이들이 젊었을 때만 해도 예술계에서 하층민 출신은 꽤 생경한 존재였다. (전후 예술계의 영웅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집안 배경이 좋다.)

둘 다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독립해 고학하며 아트스쿨에 진학했고, 1967년 세인트마틴미술학교에서 처음 만나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농담으로 일관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만남을 “첫눈에 반한 사랑”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길버트의 엉터리 영어를 알아들을 사람이 조지밖에 없어서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초기 작업들을 보면, 진지한 것은 별로 없고, 술을 왕창 마시고 해롱거리는 자신들의 모습을 기록한 것이 많다.

무명의 청년들은 단숨에 작가로 이름을 얻었다. 1968년 미니멀 아트와 컨셉츄얼 아트의 흐름을 정리한 역사적 전시-‘태도가 형식이 될 때’의 오프닝 당일, 불청객인 이들은 페인트를 몸에 바르고 스스로 조각품임을 주장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는 당연 미니멀리즘이나 컨셉츄얼리즘에 대한 힐난으로 독해됐고, 그를 목격한 독일의 아트 딜러인 콘라드 피셔가 이 듀오를 발탁했다. 이후, 뒤셀도르프에서의 개인전을 필두로 미술계의 중심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길버트와 조지가 자신들만의 문법을 갖추게 된 것은 1977년의 일이었다. 데뷔 이래 이들은 영국 런던의 게토인 스피탈필드에서 살아왔는데, 1970년대 후반 영국의 경제 사정은 대단히 좋지 않았고, 자연 이 지역에선 여러 사회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들은 그에 흥미를 느껴, 길거리의 풍경과 낙서와 구호들을 촬영해 자신들의 초상 이미지와 뒤섞었고, 곧 새로운 작품 형식이 마련됐다.

범죄를 일으킨 청소년들을 종교화에 등장하는 성인의 도상처럼 배치하거나, 분비물 사진을 조합해 배경이 되는 패턴을 만드는 등, 이들의 작업은 점차 과감해졌고,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 비로소 큰 힘을 발휘했다. 에이즈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한 것. 에이즈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요절하고, 서구사회 전반이 보수화의 역류에 휩쓸리고 있었을 때, 길버트와 조지는 에이즈의 공포를 우회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표상해낸 유일한 작가였다.

미술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