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5공화국을 뒤흔든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은 사채시장의 큰 손 장영자씨가 권력을 등에 업고 7,000억원이 넘는 사기어음을 유통시킨 희대의 사기사건이었다.
장씨는 자금사정이 나쁜 건설회사들에 대출을 알선해 주고, 그 대가로 몇 배의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유통시켰다. 당시 사채시장은 8,000억원~1조 2,000억원 규모로 추정됐는데, 통화량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이 거대한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면서 부패한 정권의 낙인을 벗기 위해 시작된 것이 금융실명제 논의였다. 정작 실명제는 93년 김영삼 정권에 의해 전격 시행됐다.
▦지하경제는 공식 국민소득 집계에 포함되지 않는 비공식 경제활동을 의미한다. 범죄조직에 의해 이뤄지는 마약, 매춘 같은 불법거래와 합법적이지만 세금을 내지 않는 숨은 거래가 포함된다.
따라서 그 규모는 파악 자체가 불가능하다. <불량경제학> 이라는 저서를 통해 전세계 지하경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모이제스 나임은 세계화와 규제완화, 인터넷 상거래의 발달로 인해 지하경제가 90년대 이후 급팽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지는 영상과 음반의 불법 다운로드도 지하경제의 일부분이다. 불량경제학>
▦지하경제 추산은 세무조사 등을 통해 직접 조사하거나 통화량 증가와 경제 성장률 차이 혹은 소득과 지출의 격차를 비교하는 간접적 방법 등이 동원되지만 저마다 중구난방이다.
며칠 전 대한상공회의소는 우리나라 지하경제 비중이 200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27.5%에서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에는 30%(250조원)를 돌파한 것으로 추정하는 보고서를 냈다.
반면 2005년 말 LG경제연구원은 금융실명제와 신용카드 사용 확대로 지하경제가 2000년에 20%(160조원)대로 줄었다는 상반된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상의 보고서는 사실 2004년 발표된 오스트리아의 슈나이더 박사의 연구를 원용한 것으로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상의는 지하경제를 절반으로 줄이면 차기정부가 목표로 하는 7% 성장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 해결방안으로 세금 인하, 규제 완화, 정부지출 감소 등을 주장했다.
보고서를 낸 의도가 엿보인다. 세금이 너무 높으면 지하경제가 번성한다는 주장은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세원 발굴을 위한 세무조사 확대나 투명한 경영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든지 필요에 꿰 맞추는 능력이 새삼 놀랍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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