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IT업체 팀장인 박나영(37)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긋지긋한 ‘명절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0대 후반부터 ‘노처녀’ 딱지를 붙인 박씨는 설 등 명절 때마다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이냐”는 가족들의 성화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요즘 들어선 박씨를 향한 가족들의 눈빛과 말투가 점점 바뀌고 있다.
“고물차를 누가 가져가냐”며 들볶던 할머니의 잔소리도 사라졌다. 연봉이 5,000만원 정도인 박씨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뀌면서 경제력 있는 노처녀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며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웃었다.
고소득의 30대 이상 미혼 여성을 뜻하는 ‘골드미스’족이 6년새 무려 12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드미스(Old Miss)로 불리며 찬밥 취급을 받던 미혼 여성들이 이제는 능력과 경제력에 따라 골드미스(Gold Miss)로 격상돼 몸값이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일 발표한 산업ㆍ직업별 고용구조조사(OES) 결과에 따르면, 대졸 이상 학력에 연봉 4,000만원 이상을 받는 30~45세 미혼 여성의 수는 2001년 2,152명에서 2006년에는 2만7,233명으로 11.7배나 껑충 뛰었다.
골드미스족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직업 수도 2001년에는 의사, 디자인 관련직, 주방장 등 7개에 불과했으나 2006년에는 영화ㆍ방송 관련 전문직, 작가 및 출판 관련직, 학원강사 등 36개로 크게 늘었다. 직업별로는 경영 관련 사무직이 3,757명(13.8%)으로 가장 많았고, 학원 강사(2,919명) 학교 교사(2,318명) 금융 및 보험 관련 사무직(2,213명) 판매원(1,441명) 등이 뒤를 이었다.
직업별 여성 취업자 중에 골드미스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직업은 변호사 등 법률전문직(22%)이었다. 이어 컴퓨터 및 통신공학기술자(16%) 건설ㆍ생산ㆍ정보통신 관련 관리직(11.6%) 영화ㆍ연극ㆍ방송 관련 전문직(10.7%) 순으로 골드미스족이 많이 분포돼 있었다.
골드미스족 비율이 개인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 중심에서 직장에 소속돼 임금을 받는 전문직 근로자로 빠르게 확산하는 현상도 두드러졌다. 전체 골드미스족 가운데 임금 근로자의 비율은 2001년 50.3%에서 2005년 72%, 2006년 82%로 뜀박질했다. 직장 여성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학력 고소득의 여성 싱글족이 늘어나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골드미스의 상당수는 잘못된 사회 시스템이 낳은 결과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임신ㆍ출산ㆍ육아 등 결혼한 여성 직장인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 부실한 상황에서, 굳이 결혼을 해 가정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느라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화려한 싱글을 택하는 여성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박상현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권장하는 것과 함께 결혼한 직장 여성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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