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계절이 무너지고 있다. 짧아진 봄ㆍ가을이 그렇고, 따뜻해진 겨울이 그렇다.
모처럼 매서운 한파를 겪었지만, 지구 온난화 탓에 지리산 반달곰이 겨울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이제 ‘따뜻한 겨울’이 대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의 ‘겨울 장사’도 달라졌다. 한겨울에도 에어컨, 아이스크림이 버젓이 팔려나가는 반면 모피 난방가전 같은 상품들은 겨울 특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따뜻한 겨울에도 살아 남기 위해 ‘계절 파괴’ 마케팅이 한창이다.
가장 민감한 쪽은 패션 분야. 당장은 마진 높은 코트류가 잘 안팔려 걱정이지만, 어쨌든 이제 뚜렷한 4계절에 따라 철철이 옷을 만들어 팔던 때는 옛말이 됐다.
2,3년 전만 해도 계절에 앞서 6개월쯤 전에 기획ㆍ제작을 한 상태에서 시즌을 맞았지만, 날씨라는 변수 때문에 위험 요인이 커졌다.
관건은 재고줄이기. 의류업체들이 일선 매장의 판매 현황과 기상 예측 결과에 따라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반응 생산ㆍ출고하는 시스템으로 바꾼 것도 이 때문이다.
신원은 동장군의 기습에 앞서 지난달 코트 판촉 사은행사를 진행하려다가 계획을 취소했다. 따뜻한 날씨가 계속된다는 기상 예보 때문이었다.
신원 관계자는 “종전에는 물량의 80% 가량을 사전 기획ㆍ제작했으나 이제는 반응생산 물량이 4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FnC코오롱은 지난해 스포츠브랜드 ‘헤드’의 봄ㆍ가을 제품 수량을 전년 대비 15% 줄이고 그만큼 여름과 겨울 제품 비중을 늘렸으며, 고정생산 물량도 20% 가량 감소시켰다.
겨울 옷의 디자인도 변화하고 있다. 진도에프앤 등 모피업체들의 주력 상품은 코트에서 길이 50~60㎝의 짧은 재킷과 조끼 아이템으로 바뀌었다.
스포츠ㆍ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초경량 다운 생산 경쟁을 벌이고, 겨울 코트에는 알파카 앙고라 캐시미어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되고 있다.
가볍고 얇은 아우터 안에 레이어드룩으로 겹쳐 입기 편하고 봄, 가을에도 입을 수 있는 카디건, 니트류의 아이템이 늘어났다.
코오롱 김현정 패션정보실 과장은 “계절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계절별로 특화된 아이템의 구분을 없애고 ‘봄-여름’, ‘가을-겨울’식으로 여러 계절에 걸쳐 입을 수 있는 ‘시즌리스(seasonless)’상품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 철’개념이 사라진 곳은 패션만이 아니다. 계절가전제품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겨울 가전매장에는 난방제품과 냉방제품이 공존 중이다.
히터 온풍기 등 난방용품들은 1월이 채 지나기도 전인데도 매장에서 빠지기 시작했고, 에어컨 신제품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가전업계는 에어컨 예약판매 경쟁이 치열하다.
LG전자 관계자는 “갈수록 더위가 찾아오는 시기가 빨라지는 등 온난화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에어컨 업체들은 설치시기를 이르면 3월로 앞당기는 등 겨울 예약판매를 위한 고객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스크림이나 맥주 등 여름 먹거리도 ‘겨울철=비수기’ 등식이 통하지 않는다. 빙과 겨울 매출은 온난화와 실내온도 상승 덕분에 두자릿수 성장세다.
빙그레는 ‘참붕어싸만코’ 등 겨울용 빙과제품의 출시를 앞당기고, 겨울 실내온도 섭씨 25도 안팎에서잘 팔리는 ‘투게더’의 TV광고와 프로모션을 11월부터 집중하는 등 빙과업계들도 겨울 장사를 강화하고 있다.
유통업체들도 계절 파괴에 따른 전략 수정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3,000여 협력회사와 온난화에 따른 산업계 트렌드 변화와 환경경영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그린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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