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양건 노동당 통전부장과의 대화록을 유출한 김만복 국정원장의 사표 수리가 차일 피일 미뤄지고 있다. 김 국정원장이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힌 지도 닷새가 지났고, 청와대가 이번 사안을 국정원으로부터 보고 받은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청와대는 여전히 "기밀 여부를 포함해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일주일째 버티고 있다.
이 사안이 이렇게 시간을 끌 일인지 회의가 짙어진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대화록 문건이 기밀인지 여부가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면 법률가 등 관계 전문가들을 불러 판단을 내리게 하면 그만이다.
청와대가 말한 '종합적 판단'도 우습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사건의 전모는 다 드러나 있다. 그것도 김 원장 스스로 밝힌 것이다. 무슨 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런데도 결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의혹이 퍼지는 것이다.
'청와대가 김 원장을 감싸지 않을 수 없는 절박한 이유가 있다'거나 '청와대가 대선 북풍공작에 개입했기 때문'이라는 말들이 청와대 주변에 적지 않다. 청와대의 자업자득이다.
이번 일은 업무상 알게 된 내용을 문서화해 외부의 특정 인사에게 유출한 고위공직자의 부적절한 행위가 핵심이다. 만에 하나 노 대통령이 유출된 문건이 기밀은 아니라고 보고 사표 수리를 반려한다면, 앞으로 공무원들은 업무상 알게 된 내용이라도 문서에 기밀도장만 찍혀 있지 않으면 마음대로 외부에 유출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회사 내부의 정보를 유출한 것이 탄로나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간부 직원에 대해 회사 사장이 "유출된 정보가 기밀인지 아닌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건지 아닌지 먼저 살펴보자"며 비호하고 하고 있다면, 당연히 사장과 해당 간부의 '특수관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염영남 정치부기자 liber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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