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긴야 지음ㆍ양억관 옮김 / 한길사 발행ㆍ272쪽ㆍ1만2,000원
1284년 6월26일 독일 중서부의 소도시 하멜른 근교의 포텐베르크 산기슭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행방불명됐다. 당시 130명은 현대 하멜른 인구와 비교하면 2,000~3,000명에 이를 정도의 숫자다.
이 많은 어린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사건은 민중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마을의 쥐를 퇴치해준 피리부는 사나이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자 아이들을 끌고 마을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변용된 이 이야기는 후일 그림형제의 독일설화집에서 ‘피리부는 사나이’(1816)로 채록된 것을 비롯해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하멜른의 얼룩무늬 옷을 입은 피리부는 사나이’(1849) 등 후대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일본의 중세사학자 아베 긴야(阿部謹也 : 1935~2006)는 1971년 독일의 한 도서관에서 고문서를 분석하던 중 이 전설의 원형을 발견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갖가지 해석이 덧입혀지는 변용과정을 추적한다. 그 변용의 스펙트럼은 예상보다 넓고 두텁다.
피리부는 사나이가 1260년 제데뮌데 전투에서 전사한 나팔수를 상징한다고 본 하멜른 시당국의 ‘애국주의적’ 해석을 비롯해, 12~13세기 광범위하게 전개된 서부독일에서 동유럽으로의 식민이주의 상징이라는 해석, 피리부는 사람을 ‘악마’로 규정해 아이들의 실종은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며 민중을 종교적으로 교화하려 한 15세기 신학자ㆍ목사들의 해석, 심지어는 아이들이 사라진 포텐베르크 산을 ‘무의식’의 세계로 해석한 카를 융 같은 이까지…피리부는 사나이 전설에 투영된 갖가지 해석은 당대인들의 욕망의 모습이라고 저자는 결론내린다.
그러나 책의 목적은 전설의 진위와 그 해석의 정당성을 판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로마네스크식 궁전, 시끌벅적한 무도회 등으로 기억되는 중세사의 이면에서 힘겹게 살아냈던 민중의 모습을 찾는 일이다.
끈질기게 이어온 전설의 생명력에서 중세 전반을 거쳐 반복되는 기근, 흉작, 역병, 홍수, 화재, 전쟁으로 인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탄식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저자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진실하게 들린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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