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7일 노무현 대통령의 헌법소원을 기각한 것은 선거의 공정성을 위해서는 정치인인 대통령이 갖는 표현의 자유는 제한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을 근거로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비난하는 발언을 한 노 대통령에 대해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한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헌재는 우선 대통령도 헌법소원을 낼 수 있는 기본권의 주체이며, 선관위 조치가 대통령의 그 같은 개인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공권력의 행사라는 점은 인정했다.
선관위의 선거중립 의무 준수 요청이 공직선거법에 근거한 경고의 성격이고, 선관위와 대통령의 헌법상 지위와 의무 등을 감안할 때 선관위 조치는 노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는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또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대통령의 발언 중 일부는 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개인으로서의 표현의 자유가 제약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동흡 재판관은 “선관위 조치는 노 대통령에게 법적 효력을 갖지 않으므로 공권력 행사가 아니며, 대통령은 사실상 공사의 영역 구분이 불가능하므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김종대 재판관은 “대통령의 기본권 주체성은 인정되지만, 선관위의 조치는 단순한 협조 요청에 불과하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헌재는 그러나 선관위 조치의 근거가 된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9조 1항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이자 행정부의 수반이므로 공명선거에 대한 궁극적 책무를 지고 있고, 공무원들은 최종적 인사ㆍ지휘감독권을 쥔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제한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따라서 노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선관위가 공개적으로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촉구한 것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선이 임박하고 야당의 당내 경선이 실시되고 있는 시기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린 공공장소에서 대통령이 야당의 유력 후보자와 그들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소속 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것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헌재는 또 선거법 위반에 대한 제재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이유로, 선관위가 노 대통령에게 의견 진술 기회를 주지 않은 것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송두환 재판관은 “공직선거법 9조1항은 일반적, 추상적 선언에 불과하며 직접적 제재의 근거가 될 수 없으므로, 이를 근거로 한 선관위의 조치는 취소돼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조대현 재판관도 “선관위의 조치는 정당한 법적 근거 없이 개인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의견을 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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