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며칠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1차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 7% 고성장과 연간 60만개 일자리 창출’은 그의 핵심 공약이기도 하다. 참여정부도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여겼지만, ‘5년간 200만개 일자리 창출 목표’는 결국 실패했다.
참여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기업을 활성화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외쳤지만, 실제론 재정 투입을 통한 공공부문의 일자리 확대에 치중했다. 손쉬운 길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참여정부 5년간 공무원 수가 6만6,000명이나 늘어났고, 공무원 인건비는 2002년 15조3,000억원에서 2007년 21조8,000억원으로 6조5,000억원 급증했다.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 부어 교육ㆍ간병ㆍ교통 등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연간 30만개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해 늘어난 일자리는 불과 28만2,000개. 오히려 공공부문의 방만한 인력과 조직 팽창이 불필요한 규제의 양산으로 이어졌다는 비만판 받았다.
이 당선인은 참여정부와는 반대로 민간 부분에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제도적 환경 조성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요약하면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세무조사 축소, 품격 있는 기업 수사방안 마련도 언급했다. 하나같이 대기업들의 희망사항을 수렴한 정책들로, ‘친기업’이 아니라 ‘친재벌’에 가까운 느낌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대기업 투자를 유도한다고 해서 일자리가 대거 창출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1995~2005년 우리나라의 전체 일자리 수는 151만개가 늘었지만, 대기업 일자리는 오히려 72만개나 감소했다. ‘고용 없는 성장’ 탓이다. 대기업의 설비투자 증가율은 2004년 이후 7~8%의 견실한 성장세를 보였지만, 산업구조가 자본ㆍ기술 집약적 형태로 고도화하면서 성장을 해도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반면, 국내 고용의 약 88%를 떠맡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경쟁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대졸 구직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지난해 중소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률은 2%대로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경기부진과 납품단가 하락이 주요인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사실 기득권자인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게 훨씬 더 필요하다.
대기업은 고유가, 환율 등 기업환경이 나빠져도 어느 정도 견딜 능력이 있지만, 중소기업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원가상승 부담을 중소기업에 고스란히 떠넘기는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는 국내 중소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대기업 투자 확대로 고용과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연간 6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중소기업 활성화와 서비스 분야의 경쟁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중소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도록 기술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시장의 자금중개 기능을 복구해 많은 기업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이들 중에서 대기업이 나오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창출된다.
규제 완화를 통한 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순기능보다 소수 재벌기업의 배만 살찌우는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 이 당선인은 연초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석, 방명록에 ‘중소기업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살아난다’고 적었다. 그가 부르짖는 ‘친기업’이 ‘친재벌’이 아닌 ‘친중소기업’이 되길 바란다.
고재학 경제산업부 차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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