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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버필드' 화끈한 액션 대신 세련된 리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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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로버필드' 화끈한 액션 대신 세련된 리얼함

입력
2008.01.1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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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라 같은 괴물과 리얼리즘이 양립할 수 있을까. 거대 괴물이 뉴욕 맨해튼을 덮친 어느 하룻밤의 이야기를 그린 <클로버필드> 는 형식이 어떻게 내용을 구원할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사실적인 괴수 영화’라는 형용모순을 가능케 한다.

TV 시리즈 <로스트> 와 <미션 임파서블 3> 를 만든 J. J. 에이브람스 감독이 제작자로 나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클로버필드> 는 영화 전편이 ‘한때 센트럴 파크라고 불렸던 곳’에서 발견된 85분짜리 캠코더 영상을 틀어주는 것으로 구성됐다. 일본으로 떠나는 롭을 위해 친구들이 마련한 깜짝 파티.

맨해튼 아파트의 흥성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친구 허드는 롭에게 전하는 파티 참석자들의 마지막 인사말을 캠코더에 담고, 롭은 여자친구 베스와 맘에 없는 말다툼을 벌인다.

화가 난 베스가 파티장을 떠난 후 갑자기 어둠에 휩싸인 채 요동치는 도시. ‘자유의 여신상’의 머리를 날려버린 괴생물체가 맨해튼 중심부를 때려 부수는 아수라 속에 롭과 친구들은 베스를 구하기 위한 사활의 ‘출애굽기’를 시작한다.

허드의 손에 들린 캠코더에 시점을 의존하는 <클로버필드> 는 사정 없이 흔들리는 유튜브 스타일의 ‘페이크 다큐멘터리’(진짜 연출된 가짜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마르고 닳도록 재생된 괴수영화의 갱생을 도모한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기록하는 자’의 사명을 가진 유튜브 세대답게 어떤 상황에서도 캠코더를 놓지 않는 허드. 덕분에 얼굴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그는 1인칭의 제한된 시점으로 관객에 밀착하며 이 영화를 ‘보는 영화’가 아니라 ‘겪는 영화’로 만든다.

짧은 시점거리는 카메라 렌즈에 피를 튀게 만들고, 디테일을 뭉개는 흔들리는 영상은 재난의 구체적 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주인공들에 감정을 이입시킨다.

훔쳐보기의 욕구와 불안감을 자극하는 ‘핸드 헬드’(들고찍기)의 화면은 현기증뿐 아니라 관객을 재난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가는, 놀랍도록 쌍방향적인 흡인력을 유발한다. 낯선 신인배우들로 캐스팅 목록을 채운 것도 이 뻔한 괴수영화를 리얼하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영화는 예상한 대로 기시감 가득한 장면들을 통해 9ㆍ11 테러의 트라우마를 건드린다. 주인공들은 ‘감히’ 괴물과 싸우는 대신 괴물이 초래한 파국과 대항한다.

괴물 퇴치는 공권력에 일임한 채 멈춘 지하철과 무너진 건물, 끊긴 다리 같은, 사소하지만 절실한 재난과 싸운다. 테러와의 전쟁이 아니라 테러 여진과의 전쟁이 앞 자리를 차지한 오늘날의 미국이 이 영화를 괴물영화이되, 괴물이 주인공이 아닌 독특한 영화로 만든 듯하다.

영화 속 재난의 하룻밤은 롭과 베스가 맨해튼 근교 코니 아일랜드의 유원지로 놀러 가 찍은 영상 위에 ‘덮어쓰기’ 됐다. 카메라가 수없이 꺼졌다 켜지는 사이 툭툭 끊기는 재난장면 사이로 한 컷씩 잠입하는 일상의 평화가 삶과 죽음, 공포와 평화 같은 대립항들을 영리하게 대비시킨다.

괴수의 현란한 용틀임과 화끈한 액션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겠지만, 세련된 괴수영화를 기다려온 이들이라면 반길 만하다. 감독 매트 리브스. 24일 개봉. 15세 이상.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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