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꾸러기 악동의 반듯한 모습을 보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만든 사극(?) <엔젤> 도 그런 불편함을 준다. 엔젤>
과감한 연출과 여성 심리에 대한 예리한 통찰으로 영화계에 충격을 던져 왔던 오종, 그가 ‘스탠다드’한 드라마를 만들었다니 잔뜩 경계심을 품을 수밖에. 그러나 이 영화에 뒤통수를 치는 비틀림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도, 오종은 감동까지 주려고 시도한다.
1905년 영국,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놀리에 사는 엔젤(로몰라 가레이)은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꿈에 빠져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허황된 꿈’이라며 엔젤을 말리지만, 그녀는 당당히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보낸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엔젤은 부와 명성을 거머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그리고 한때 하인으로 갈 뻔했던 대저택 ‘파라다이스’의 주인이 된다.
엔젤은 출판기념회에서 퇴폐적 매력을 풍기는 화가 에스메(마이클 파스빈더)를 만나고, 한눈에 그에게 반한다. 돈과 능력, 사람들의 사랑을 모두 가진 엔젤이기에 그와의 결혼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가 쓰는 판타지 소설처럼, 삶도 행복한 나날로 채워질 것만 같다.
그러나 판타지는 꿈 속에서나 가능한 일. 주변 사람과 독자, 결국 자기 자신까지 속이며 살아온 ‘짝퉁’의 삶에 전쟁이 닥치고, 엔젤은 격렬한 마찰음을 내며 진짜 자신과 마주보게 된다.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무난한 악보 위에서 연주되지만, 군데군데 오종 특유의 불협화음이 삽입돼 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애완견 술탄이 죽은 걸 알고 슬프하지만, 엔젤은 똑같이 생긴 개에게 술탄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그럼 됐지”하며 웃어 버린다.
가식과 허영으로 모래성 같은 삶을 쌓아가는 엔젤보다, 그녀의 실체를 처음부터 알아 본 편집장의 부인 헤르미온느(샬롯 램플링)의 존재감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에스메가 아니라 에스메와의 로맨틱한 ‘관계’에 빠진 듯한 엔젤의 시선, 그녀의 충실한 추종자 노라(루시 러셀)와의 미묘한 감정 등도 진부한 멜로드라마로 이 영화를 치부해버릴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다.
그러나 바로크적인 장식과 화려한 의상에 비해, 재기발랄했던 오종의 상상력과 날카로움은 묻혀 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때로는 ‘도발’과 ‘충격’보다 ‘스탠다드’가 더 어려운 것 같다.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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