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직 등 편 / 깊은샘행동, 열망이었던 시… 웅혼한 남성적 언어
1944년 1월 16일 시인 이육사(李陸史)가 중국 베이징의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숨졌다. 40세였다. 퇴계의 14대손인 그의 본명은 원록(源錄), 아명은 원삼(源三)이다.
1926년 중국 중산대학 동창생 명부나, 1930년 발표한 첫 시 ‘말’의 필명으로 기록된 이름은 활(活)이다. 이육사라는 이름이 나타나는 것은 1930년부터다.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돼 1년 7개월 간 옥살이를 할 때 그의 수인번호가 264였다.
그 번호를 발음대로 적은 이름이 이육사다. 처음에는 ‘죽일 육(戮) 역사 사(史)’, 혹은 ‘고기 육(肉) 설사할 사(瀉)’ 자를 썼다. 식민지의 젊음이 느꼈을 역사에 대한 절망, 자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대륙 육(陸) 역사 사(史)’ 자를 쓴 것은 1932년 그가 의열단이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1기생으로 입학할 때부터 보인다. 이름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그의 저항정신을 보기 위함이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일제의 감옥을 17번 드나들었다.
이육사가 남긴 시는 지금까지 확인된 것이 40편을 넘지 않는다. 해방 이듬해 발간된 그의 유고시집인 <육사시집> 에 실린 시는 20편이다. 하지만 그는 이 많지않은 시편으로 한국 현대시에 미답의 경지를 열었다. 그를 포함해 일제 때 훼절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시인들, 한용운이나 윤동주와도 확연히 다른 웅혼한 남성적 언어가 그의 시에는 있다. 육사시집>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이러매 눈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절정’ 전문).
<이육사전집> 은 2004년 이육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의 시와 함께 소설, 수필, 문예ㆍ문화비평, 시사평론, 편지글 등을 모두 한곳에 모아 발간된 책이다. 이육사전집>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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