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 문학과지성사시인의 열정, 운동가의 의지… 페미니즘 문학ㆍ문화 선구자
올해는 무자년, 쥐띠 해 문인들도 많다. 신경림 최인훈이 1936년생, 이문열 김훈이 1948년생이다. 1948년 1월 17일 생인 시인 고정희도 살았으면 올해가 갑년이다. 그는 1991년 6월 9일 지리산 등반 중 실족사했다. 43세였다.
고정희는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 그리고 페미니즘 문화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시인이다. 민족민중문학과 여성해방문학, 5ㆍ18과 씻김굿이 그의 시에서 하나로 됐다. 한신대를 졸업하고 교사, 기자를 거쳐 1975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크리스찬아카데미 출판부 책임간사, 가정법률상담소 출판부장, ‘여성신문’ 초대 편집주간 등을 지냈으며 1984년 창립한 여성주의 공동체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이었다.
그와 절친했던 동갑의 조한혜정을 비롯해, 조형 조은 조옥라 장필화 등 사회학ㆍ여성학 학자들이 주축이었던 모임에 그는 유일하게 시인으로 참여했다. 2001년 그의 10주기에 제정돼 격년제로 지난해까지 4회 수상자를 낸 고정희상, 200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는 고정희청소년문학제는 고정희의 이 같은 선구적 여성문학인, 여성운동가로서의 삶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고정희는 생전에 <이 시대의 아벨> (1983) 등 10권의 시집을 냈고, 1992년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가 나왔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사랑법 첫째’ 등은 의식의 치열함을 여성적 서정의 섬세함으로 감싸안아 더 큰 울림을 주는 그의 명편들이다. 모든> 이>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으면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내 기대 높이가 자라는 쪽으로/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내 외롬 짓무른 밤일수록/ 제 설움 넘치는 밤일수록/ 크고 무거운 돌덩이 하나 가슴 한복판에 매달아 놓습니다’(‘사랑법 첫째’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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