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부(國富)펀드 격인 한국투자공사(KIC)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월가의 투자은행(IB) 사냥에 나선다.
KIC는 15일 글로벌 IB인 메릴린치에 20억달러를 지분투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KIC는 외환보유액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2005년 7월 설립된 해외투자기관으로, 운용자금은 200억달러이다.
KIC의 이번 투자는 연 9% 배당을 받는 의무전환우선주를 인수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이 주식은 2년9개월 후 보통주로 전환되며, 그 이후 KIC는 메릴린치 지분을 3% 이상 보유하게 된다.
KIC 측은 “지난해 말 재정경제부로부터 20억달러의 추가 자산 위탁을 약속 받은 뒤 신규 투자기회를 모색하다 메릴린치와 접촉해 이번 투자를 성사시켰다”며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진 배당을 받고 이후 보통주로 전환해 주가상승 이익을 노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선진국 채권과 우량 주식에만 투자해온 KIC가 메릴린치 지분투자를 결정한 것은 최근 중동과 중국의 국부펀드들이 공격적으로 모건스탠리,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월가 IB들의 지분 매입에 나서고 있는데 자극 받은 것으로 보인다.
KIC 관계자는 “메릴린치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산관리나 주식거래 등 다른 부분의 영업기반이 튼튼해 이번 자본확충 이후에는 빠른 속도로 종래의 수익력을 회복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올해 7월께 월가의 IB에 투자하는 10억달러 규모의 사모펀드를 준비 중인 삼정KPMG 윤영각 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론스타 등 미국계 사모펀드가 국내 은행에 투자해 엄청난 매각차익을 얻은 것과 같은 기회가 우리에게도 찾아온 것”이라며 “주가가 평소보다 30~50%나 급락한 메릴린치 등 월가의 IB 지분을 헐값에 인수할 경우 2~3년 후 주가 회복에 따른 상당한 수익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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