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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군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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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군살

입력
2008.01.17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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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겨울다운 추위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땔감을 쓰던 옛날 이런 추위에는 군불을 넣었다. 밥짓기 등 음식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방을 따뜻하게 하려고 아궁이에 지피는 불이 군불이다. 날씨가 추워 세 끼 밥할 때 지피는 불만으로는 방바닥이 금방 식어 버리면 빈 솥에 물을 붓고 군불을 땠다.

아궁이가 난방과 관계가 없어진 지 오래여서 실제로 군불을 보기는 어렵다. 정가 주변에서 명분 없이 뭔가를 도모하기 위해 작업한다는 의미로 군불을 땐다는 표현이 가끔 쓰이는 정도다.

▦ 명사 앞에 붙여 쓰는 '군'은 대개 '쓸데없는' 또는 '가외로 더 한' '덧붙은' 등의 뜻을 더한다. 군글은 군더더기 글, 군글자는 쓸데없는 글자나 필요 이외에 더 있는 글자다.

글 쓰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군말썽은 공연히 일으키는 말썽인데 인수위 간부의 언론인 성향조사 논란이나 김만복 국정원장의 대화록 유출은 말 그대로 군말썽이다.

유출 배경에 새 정부를 향한 추파 의도가 있었다면 군수작이다. 군식구, 군식솔, 군입 등은 원래 식구 외에 덧붙어서 얻어 먹는 식구들을 뜻하는데, 대통령직 인수위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지탄 받는 것은 군일 하는 군사람들이 많아서다.

▦ 군돈, 군돈질은 안 써도 좋은 데에 쓸데없이 돈을 쓰는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와 같은 국가적 사업이 군돈질이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군걱정이었으면 좋겠다.

군눈은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쓰는 것이고 군걸음은 헛걸음이다. 군고기는 동물 수컷 성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그 놈은 어떻게 빠른지 다리샅에 군고기가 처져 붙은 굼뜬 말로서는 좀처럼 따를 수 없었다'(한설야, <탑> )처럼 엄연히 일상에서 쓰였다. '군' 자 들어가는 말은 이밖에도 군소리 군말 군대답 군욕심 군수선 등 무수하다. 대부분 경계해야 할 것들이다.

▦ 요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인수위 주변에서 인기짱인 용어는 군살 빼기이다. 주요 브리핑에서 거의 빠지는 법이 없다. 이 당선인도 그제 신년기자회견에서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관련 부서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세자 그 당위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이 당선인의 말대로 중복적인 기능을 통합하고 나누어진 기능을 융합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다. 군살과 꼭 필요한 살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국가조직의 건강을 위해 뺄 살은 반드시 빼야 한다. 더 이상 군말 없이.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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